10년 끌어온 삼성 합병·회계 의혹 결국 무죄⸱⸱⸱남은 것은 ‘지배구조의 그림자’

김지수 기자 / 2025-07-22 23:58:18

10년 가까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이 최근 대법원의 최종 무죄 확정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법리적으로는 무죄라 할지라도, 한국 대기업 지배구조의 구조적 문제와 재벌 승계의 본질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간단하다.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회장이 어떻게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강화했는가다.

2015년 당시 이재용 개인이 보유한 삼성전자 직접 지분은 1.63%에 불과했다. 그룹을 경영하려면 지분을 늘려야 하는데 단순 매입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간접 지배 구조’가 동원된다.

구조는 ▲이재용이 23% 보유한 제일모직 ▲제일모직이 삼성생명 지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7.2% 보유 ▲또 다른 계열사인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4% 보유다. 즉, 제일모직 → 삼성생명·삼성물산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력 사슬을 완성하면 개인 지분은 낮아도 그룹 전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삼성물산이 문제였다. 이재용은 삼성물산 지분이 없었기 때문에 삼성물산을 본인이 가진 제일모직과 합쳐야 간접 지배력이 완성된다.

그러나 합병에는 비율이라는 민감한 변수가 있다. 당시 삼성물산은 매출 28조원, 자산 30조원 규모의 건설·무역 대기업이었다. 반면 제일모직은 매출 5조원, 자산 10조원에 불과했다. 객관적으로 삼성물산이 훨씬 컸다.

그런데 실제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 1 : 삼성물산 0.35였다. 덩치가 작은 제일모직이 큰 삼성물산을 ‘헐값’으로 흡수한 셈이다. 이 비율 덕분에 이재용이 많이 가진 제일모직 지분 가치가 크게 불어났고, 자연스럽게 삼성물산 지배력까지 얻게 됐다.

삼성물산 주주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왜 내 회사를 헐값에 넘기냐?” 주주총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2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 뒤엔 박근혜 청와대·최순실·정유라 승마 지원으로 이어지는 국정농단 연결고리가 있었다.

‘뻥튀기’와 ‘눌러찍기’…양쪽에서 일어난 조작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했다.

먼저 삼성물산 가치를 눌러야 했다. 이에 레미안 브랜드 수주를 의도적으로 줄이고 해외 플랜트 실적도 숨겼다. 즉, 실적을 낮춰 삼성물산 주가를 ‘저평가’ 시켰다.

반면 제일모직 가치는 부풀려야 했다. 그러나 제일모직은 ‘속 빈 강정’이라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뻥튀기’했다.

삼성바이오는 당시 영업손실 2000억원이었지만, 장부상 당기순이익 1.9조원으로 변신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손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원래 장부가 2900억이었는데 하루아침에 4.8조로 재평가됐다. 이 과정에서 콜옵션 숨김·허위 공시 의혹이 불거졌고 검찰은 분식회계 규모를 4조8000억원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은 모든 혐의를 무죄로 봤다. "경영권 승계 목적은 일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게 유일한 목적이라 단정할 수 없다." "합병으로 삼성물산 주주가 피해를 봤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오히려 합병으로 ‘경영 안정성’이 확보돼 주주에게도 이익일 수 있다."고 봤다.

또 "콜옵션 숨김은 맞지만, 분식회계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가치평가는 해석 차이가 있을 뿐 ‘고의적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냈다. 결국 1·2심에 이어 대법원도 19개 혐의 모두 무죄를 확정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주도한 건가?

들여다 보니 '미전실'이 나왔다. 미래전략기획실이다. 재판 과정에서 미전실이 주도했다는 문건이 나오고 삼성 임원간 통화내역도 공개됐지만 재판부는 모든 걸 "아니다"고 했다. 결국 이재용은 아무도 모르게 경영권 승계를 당한 꼴이 됐다.

이번 판결은 이재용 개인에게 ‘10년 리스크 종결’을 의미한다. 삼성도 사법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재계 리더십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법적으로 무죄’가 곧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재벌의 순환출자·금융 계열사 동원·국민연금 개입 등 구조적 문제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줬다.

특히 보험가입자 돈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국민연금의 찬성으로 합병이 통과된 점은 공공성과 기업 지배구조 모두에 심각한 의문을 남겼다.

이번 판결로 경영권 승계 정당성은 확보됐지만, 재벌 지배구조 개혁 요구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여전히 “법은 재벌에 관대했다”는 비판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이번 무죄 판결은 ‘사법 리스크 종결’이자 동시에 ‘한국 재벌 지배구조의 민낯’을 다시 보여준 사건이다. 법정에서는 이겼지만, 여론의 법정에서는 여전히 삼성과 이재용에게 불편한 질문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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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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