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합병이 오직 승계만을 위한 목적이라 단정할 수 없어⸱⸱⸱주주 이익 침해 증거 부족"
10년 사법 리스크 종결로 신사업 탄력 전망⸱⸱⸱재벌 지배구조 개혁 요구는 과제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10년 가까이 한국 사회의 법적·윤리적 쟁점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이 지난 17일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로 막을 내렸다. 사법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법적 무죄 판결과는 별개로, 한국 대기업 지배구조가 가진 구조적 취약성과 재벌 승계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여전하다.
■ 지배력 강화 위한 '간접 지배' 사슬 완성
이 사건의 핵심은 이 회장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어떻게 확보했는가다. 2015년 당시 이 회장이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1.63%였다.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는 지배 구조의 정점에 서야 했고 이를 위해 계열사 간 복잡한 지분 관계를 활용한 간접 지배 방식이 동원됐다.
당시 지배 구조의 흐름은 '이 회장 → 제일모직(지분 23.2%) → 삼성생명 →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 삼성전자(지분 4.1%)'로 이어지는 형태였다. 이 회장이 지배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최대 주주인 제일모직과 삼성전자의 지분을 가진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문제는 합병 비율이었다. 당시 삼성물산은 매출 28조원, 자산 30조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었던 반면, 제일모직은 매출 5조원, 자산 10조원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실제 결정된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 1 대 삼성물산 0.35'였다. 덩치가 큰 삼성물산을 헐값에 제일모직에 편입시킨 셈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이 회장은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손에 넣었다.
■ 기업 가치 조작 의혹과 '4조8000억' 회계 논란
검찰은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추기 위한 인위적인 조작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의 경우 레미안 브랜드의 신규 수주를 의도적으로 줄이고 해외 플랜트 실적을 누락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낮추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반대로 자산 규모가 작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를 변경했다는 점이 쟁점이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당시 20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었으나 회계 처리 방식 변경을 통해 장부상 당기순이익 1조9000억원의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더 깊이 살펴보면 손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원래 장부가는 2900억이었는데 하루아침에 4조8000억원으로 재평가됐다. 이 과정에서 콜옵션 숨김·허위 공시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은 분식회계 규모를 4조8000억원으로 판단했다.
■ 사법부 "경영 안정성 확보와 주주 이익"
그러나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 역시 이 회장의 19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사업적 필요성에 따른 합리적인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논란이 된 합병 비율에 대해서도 "당시 주가를 바탕으로 산정된 비율이 법령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오히려 합병을 통해 그룹 전반의 경영 안정성이 강화된 점이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회사 측 논리를 받아들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서도 "회계 기준 선택에 있어 해석의 차이가 존재할 뿐, 고의적인 허위 공시나 조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그럼 도대체 이를 누가 주도한 것일까.
들여다 보니 삼성전자의 미래전략기획실이 등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미전실이 주도했다는 문건이 나오고 삼성 임원간 통화내역도 공개됐지만 재판부는 모든 걸 "아니다"며 면죄부를 줬다. 결국 이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경영권 승계를 '당한' 셈이 됐다.
이번 판결로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부터 이어진 10년의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삼성은 대규모 투자와 M&A 등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며 재계 리더십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남긴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문제는 여전히 한국 경제의 과제로 남았다.
박시동 경제 평론가는 "법리적으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과정의 정당성까지 완전히 확보된 것은 아니다"며 "계열사 합병 과정에서 소수 주주의 이익보다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가 우선시되는 구조적 결함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보험 가입자의 자금이나 국민연금의 공적 자금이 특정 개인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한국 재벌 체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순환출자와 금융 계열사 동원, 그리고 불투명한 승계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다. 시장과 여론이 요구하는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라는 숙제는 삼성과 한국 재벌 시스템에 여전히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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