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진 이력 지고 삭제?⸱⸱⸱'신뢰 붕괴' 석유공사, 대왕고래에서 남긴 것

김민준 기자 / 2025-10-10 22:27:16
지질자원연구원 지진 이력 지도 삭제 요구와 보고서 축소 논란
시추 예정지 인근 지진 발생 사실 누락에 따른 과학적 정직성 훼손
국가 대형 프로젝트 절차적 정당성 확보 위한 인적 쇄신 및 제도 개선 필요
거대 공기업이 망상에 빠진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신뢰를 스스로 걷어차고야 말았다. 석유공사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측에 "시추 예정지의 '지진 이력 지도'를 빼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오늘(10일) 자 JTBC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김민준 기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거대 공기업이 망상에 빠진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신뢰를 스스로 걷어차고야 말았다. 석유공사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측에 "시추 예정지의 '지진 이력 지도'를 빼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오늘(10일) 자 JTBC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작년 9월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0여 년 동안 동해상에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은 총 102건 발생했다. 이 중 최고 진도는 5.1에 달했으며 특히 시추 예정 지점에서 불과 1.7km 떨어진 지점에서도 지진이 관측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추 작업으로 인한 지진 유발 가능성이 이미 제기된 상황에서 이 같은 구체적인 위험 지표는 사업의 안전성을 검토하고 리스크를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 자료였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연구원 측에 수차례 수정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지진 이력 지도를 포함한 핵심 데이터들이 보고서에서 제외됐다. 연구원이 해당 요구에 난색을 표하며 용역이 중단되자 석유공사는 자체 조사와 외국 전문가 자문만을 토대로 별도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최종 보고서에는 당초 102건이었던 지진 사례가 16건으로 대폭 축소됐으며 시추 예정지 인근의 지진 기록은 자취를 감췄다. 이는 과학적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사업 추진'에 맞춘 '답정너'식 결론을 위해 사실을 선별적으로 취합, 왜곡한 꼴이다.

사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부터 경제성을 두고 논란이 지속됐다. 결국 1차 시추 이후 정부는 "경제성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이 과정에서 시장은 출렁였다. 정권의 정책 기조에 맞추기 위해 과학적 데이터를 왜곡한 행위는 결과적으로 거버넌스 리스크로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전문가의 분석 결과가 발주처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정되거나 삭제되는 구조에서는 어떤 국책 사업도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이는 연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동시에 국가 데이터 자산의 무결성을 훼손하는 행위다.

현재 대두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감사와 수사를 통한 사실관계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관련 기관 간 문서 관리 현황과 커뮤니케이션 로그에 대한 보존 조치를 통해 데이터 수정 요구의 적절성을 가려내야 한다.

또한 향후 대형 프로젝트 추진 시 안전 및 환경 데이터를 전면 공개하고 외부 검증을 의무화하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 용역 수정 요구 내역과 전문가 자문의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이해충돌을 차단하고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하는 조직을 구성해 지역사회 및 시장과 상시 소통해야 한다.

사업 추진과 중단의 판단 기준을 사전에 합의하고 공개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인적 쇄신을 통한 원칙 확립 없이는 무너진 국책 사업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어렵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직한 보고와 절차적 투명성만이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방안이다.

과학을 정치에 종속시키는 행위, 그것은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과 불신을 야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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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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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자체 예산 결산 등의 재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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