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도 한 장’ 지우려는 유혹이 부른 신뢰 붕괴···석유공사가 대왕고래에서 남긴 것

백도현 기자 / 2025-10-10 22:27:38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또다시 신뢰의 파고에 휩쓸렸다. 석유공사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측에 “시추 예정지의 ‘지진 이력 지도’를 빼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오늘(10일) 자 JTBC 보도는 사업의 성패 이전에 정부·공기업 의사결정의 투명성 자체가 엉망이었음을 드러냈다.

이미 2024년 ‘시추로 인한 지진 발생위험’ 경고가 나온 상태에서 한전은 오로지 윤석열씨 눈치를 보느라 이를 감추려 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난해 9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 동안 동해에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102건 발생했고 최고 진도는 5.1이나 됐다. 특히 시추 지점에서 불과 1.7km 거리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이 외에도 공사의 여러 차례에 걸친 수정 요구에 해당 연구원이 난색을 표하며 연구 용역은 중단됐다. 결국 석유공사는 자체 조사와 외국 전문가 자문이 담긴 별도 보고서를 만들었다. 결국 보고서에는 지진 사례 총 16건만 담겼고 시추 예정지 인근에서 났던 지진 사례는 사라졌다.

지진 지도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를 지우고자 한 것, 그건 과학을 정치에 종속시키는 상징적 행위였다.

대왕고래는 시작부터 과도한 정치성과 장밋빛 수치로 논쟁을 키웠다. 1차 시추에서 “경제성 판단이 어렵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고 이후엔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메시지가 뒤따랐다. 정권 교체로 동력은 약해졌고, 석유공사는 해외 투자자를 모집해 2차 시추를 모색했지만, 프로젝트 향배는 불투명해졌다. 그 사이 시장은 출렁였고 관련 공기업 신뢰도는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문제의 핵심은 ‘결정 과정의 과학적 정직성’이다. 위험을 과장할 이유도 축소할 이유도 없다. 시추·개발로 인한 유발 지진 사례는 여러 차례 국제적으로 보고됐다. 한국 동해안 일대의 미소지진 관측·독립 모니터링 체계는 애초부터 설계돼야 했다. 그런 기본을 건너뛰고 불편한 데이터의 표시를 지우려는 순간 사업 리스크는 기술이 아니라 거버넌스에서 폭증한다.

이제는 ‘대대적 물갈이’가 필요하다. 인사 물갈이 자체가 만능은 아니지만, 원칙을 강제할 인적 쇄신이 없으면 신뢰 회복은 불가능하다.

또한, ▲안전·환경 데이터 ‘완전 공개’와 외부 검증 의무화 ▲사업 추진·중단의 판단 기준과 책임소재의 사전 합의·공개 ▲이해충돌 차단(용역 수정 요구 내역·전문가 자문 전 과정을 기록·공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담 조직과 지역 설명회의 상시화 등을 새로운 리더십이 즉시 실행해야 한다.

특히 이번 의혹의 사실관계는 감사·수사로 가려야 하며 관련자 문서관리·커뮤니케이션 로그는 보존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대형 국가 프로젝트는 기술보다 ‘절차적 정당성’이다. 불편한 데이터일수록 더 크게 보여주고 실패의 비용일수록 더 선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지도를 지우는 손을 거두는 순간 정책의 미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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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현 기자

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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