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신문=백도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을 현재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하자 대법원은 곧장 1조4700억원 규모의 '견적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 새 청사가 필요하다는 논리지만, 부지 매입비만 무려 1조818억원으로 산정해 논란이 거세다. 특히 신축 기준지를 서울 서초구청 부지로 잡으면서 ‘서초동 집착’이라는 비판과 함께 국민과 정부·여당을 조롱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사건 적체를 호소해 왔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대법관 1인당 연간 사건 처리량은 3100~3300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9~10건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물리적으론 당연히 처리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재판기록 검토조차 없이 판결이 내려지는 건 당연하다.
아이러니한 건 격무를 호소하며 “사건이 너무 많다”던 당사자들이 정작 대법관 증원에는 결사반대한다는 점이다. “특권 축소를 원치 않는 뻔한 속셈”이라는 비판이 합리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 ‘증원=특권 축소’ 계산법
민주당은 “증원 없이는 판결 품질 저하와 사법 불신이 고착화된다”며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대법원 측은 증원 논의를 ‘비용 폭탄’으로 되돌려주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 정도 비용이 드는데 괜찮겠냐”라는 조롱으로 들린다. “우리는 힘들다”면서도 “사람은 못 늘린다”는 ‘희대’의 모순은 결국 특권 수호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견적서’에 나타난 논란의 핵심은 추가되는 대법원 업무공간 기준지를 서초구청 부지로 잡았다는 것이다. 공시지가 1조원이 넘는 부지를 선택하면서 합리적 대안은 아예 배제했다. 세종시 이전 시 수백억 규모로도 충분하다는 추산이 있음에도 말이다.
대법관 1인당 필요 면적을 247.5㎡, 약 75평으로 제시한 것도 놀랍다. 판사 한 명에게 70평대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국민 눈높이와 얼마나 동떨어진 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물론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은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는 얼마든지 개정 가능한 법률이다. 더구나 향후 대한민국의 행정수도가 세종시로 바뀔 가능성이 확실한 만큼 그곳으로 옮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국법원장회의에서는 개혁 요구에 한참 미달하는 4명 수준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현재 대법관들이 사용하는 서초동 건물은 애초 18명이 근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결국 그 수만큼만 늘리겠다는 저항의 표현인 셈이다.
서초동 1조원 부지를 전제로 한 계산은 합리적 근거보다 특권적 상징성에 더 가깝다. 결국 증원 거부의 본질은 권한의 분산 또는 축소를 피하려는 사법부의 정치적 계산이다.
대법원장에 줄 선 법관들에 묻는다. 그토록 법원의 독립을 부르짓으면서 내부에서의 간섭엔 철저히 눈 감는 이유는 뭔가.
아래는 최근 나온 법원노조성명서다.
"조 대법원장은 검찰총장 시절의 윤석열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 법원장들을 앞세워 대한민국 보수의 마지막 전사처럼 행동하지 말고 본인이 직접 결자해지 하길 바란다.···지금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사법개혁에 많은 국민이 호응하고 있고 법원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번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대법원장의 진두지휘에 따라 대법원이 비상식적인 절차를 통해 선고한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파기환송 판결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또한 형사소송법을 어겨가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받는 윤석열을 풀어 준 지귀연 부장판사의 구속취소 결정은 불신의 시작점이 됐다. 이 판결과 결정으로 2025년의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이다. '법의날' 행사에서 조 대법원장은 사법권 독립을 강조했으나, 그 직후 정치권에서는 대법원장 사퇴, 탄핵을 쟁점화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제 책임있는 자가 해결해야 한다. 그것만이 사법부가 사법개혁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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