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결신문=신세린 기자] 인공지능(AI) 산업 경쟁이 기술·반도체 중심에서 ‘전력 인프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초거대 모델 학습과 AI 반도체 개발에 열을 올리는 각국의 전략 뒤편에서, 송전망과 변압기라는 ‘보이지 않는 병목’이 미래 경쟁력의 향방을 가르고 있다.
■ 100배 연산의 그늘⸱⸱⸱‘전기 먹는 하마’가 된 AI 인프라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이미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GPU 기반 AI 팜은 단일 캠퍼스 기준으로 수백 MW급 전력 계약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전통적 IT센터 대비 서버·냉각 합산 피크 부하가 수 배 이상 높다. 이는 소형 발전소 또는 중소도시 전체와 맞먹는 전력이다.
8일 시장조사 기관인 '한국IDC'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25~28년 연평균 11%씩 증가해 6.2GW 안팎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AI 인프라는 24시간 중단 없는 전력 공급을 요구해 전력계통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력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하면 한국의 ‘AI 초격차’ 전략도 공허한 약속이 될 수 있다.
■ 첨단 경쟁의 ‘아날로그 역설’⸱⸱⸱초고압 변압기 품귀
AI 전력난의 심각성은 기술 발전 속도와 인프라 확충 속도의 시간차에서 비롯된다. 반도체 공정은 1~2년 단위로 진화하지만 발전소·송전망 건설은 수년에서 10년 이상 걸린다.
특히 초고압 변압기는 글로벌 공급망 병목의 상징이다. 미국·유럽의 전력망 교체와 AI센터 건설 수요가 겹치며 대형 변압기 리드타임이 80~120주로 늘었다. 반면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 등 국내 기업은 북미향 초고압 프로젝트 수주로 수주잔고가 10조원대로 급증하며 ‘K-변압기’의 수혜주로 부상했다.
이는 디지털 경쟁력의 근간이 실은 구리선·변압기·송전탑 같은 아날로그 인프라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국내 AI 인프라 확충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AI 전력 대란의 해법은 단순 증산이 아닌 효율 혁신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첫째, 하드웨어·냉각 효율화다. 구글은 AI 제어를 통해 데이터센터 냉각 전력을 최대 40% 절감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는 침지냉각 및 무수냉각 전환으로 2024 회계연도 WUE(물 효율)를 0.30 L/kWh까지 낮추며 2021년 대비 39% 개선했다. 실리콘 카바이드(SiC)·질화갈륨(GaN) 전력 반도체 도입도 시스템 손실을 최소화한다.
둘째, AI를 활용한 전력망 운영 혁신이다. AI 기반 실시간 부하 예측 시스템은 수요 불확실성을 낮추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AI 전력운영시스템 실증’과 스마트그리드 전환 정책은 이러한 에너지-디지털 융합의 핵심이다.
■ ‘AI 인프라 안보’ 국가 로드맵 시급
업계 한 전문가는 "한국이 AI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AI 인프라 안보’를 국가 전략의 최우선 순위로 격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수도권 전력 집중 완화'다.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몰리며 전력망 포화가 심각하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2024.06.14 시행)을 통해 지역 이전과 차등 요금제를 병행해야 한다.
'전력 인프라 속도전'도 필요하다. 이 전문가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2025.09.26 시행)에 따라 정부와 한전은 동해안–수도권 500kV HVDC 송전선로 등 대형 사업에 착수했는데 이 때 중요한 건 AI 수요 증가에 맞춰 송변전 시설 인허가·건설 속도를 혁신적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공기업 재무 건전성 확보와 요금체계 개편도 병행 과제"라고 지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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