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블랙홀, 'AI 초격차' 발목 잡나⸱⸱⸱전력 인프라에 미래 경쟁력 달렸다

신하연 기자 / 2025-10-08 00:27:07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2028년 6.2GW 예상⸱⸱⸱에너지 안보 차원 접근 시급
리드타임 100주 넘어선 초고압 변압기⸱⸱⸱K-전력기기 글로벌 점유율 확대
분산에너지법 및 전력망 특별법 시행으로 계통 불안 해소와 지역 분산 박차
인공지능(AI) 산업 경쟁이 기술·반도체 중심에서 ‘전력 인프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초거대 모델 학습과 AI 반도체 개발에 열을 올리는 각국의 전략엔 송전망과 변압기 경쟁력이 미래 향방을 가르고 있다. (사진=AI)

[예결신문=신하연 기자] 인공지능(AI) 산업 경쟁이 기술·반도체 중심에서 '전력 인프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초거대 모델 학습과 AI 반도체 개발에 열을 올리는 각국의 전략엔 '송전망'과 '변압기'라는 숨은 인프라가 미래 경쟁력의 향방을 가르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이미 산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GPU 기반의 AI 팜은 단일 캠퍼스 기준으로 수백 MW 규모의 전력 공급을 요구한다. 이는 전통적인 IT 센터와 비교했을 때 서버와 냉각 장치의 합산 피크 부하가 수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대규모 부하는 소형 발전소 하나 또는 중소도시 전체의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8일 시장조사기관인 한국IDC 분석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11% 수준으로 성장, 6.2GW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AI 인프라는 특성상 24시간 중단 없는 전력 공급을 필요로 하며, 이는 국가 전력계통 전체의 운영적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전력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국가 차원의 AI 초격차 전략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위험이 크다.

첨단 디지털 경쟁의 성패가 변압기와 구리선, 송전탑 같은 아날로그 인프라에 달려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반도체 공정은 1~2년 단위로 급격히 진화하지만, 전력 공급을 위한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에는 통상 10년 이상의 장기적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시간차는 AI 산업의 가파른 성장 속도를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는 수급 불균형의 근본 원인이 된다. 특히 초고압 변압기는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의 상징적인 품목이 됐다. 미국과 유럽의 노후 전력망 교체 주기와 신규 AI 센터 건설 수요가 겹치면서 대형 변압기의 리드타임은 과거 40~50주 수준에서 현재 80~120주까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주문 후 설치까지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 초고압 기기 공급 부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이 같은 공급망 위기는 오히려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에게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 등 주요 기업은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초고압 프로젝트 수주를 독식하며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의 수주잔고는 약 10조원 규모이며, 효성중공업 역시 약 12조원에 달하는 수주 물량을 확보했다. 북미향 초고압 프로젝트 비중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도 동반 상승하는 추세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AI 인프라 확충에 필요한 변압기 물량을 적기에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수출용 물량 확보와 국내 인프라 강화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다른 AI 전력 해법은 에너지 소비 효율의 혁신이다. 구글은 AI 제어 시스템을 도입해 데이터센터 냉각 전력을 최대 40%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침지냉각 및 무수냉각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통해 물 효율 지표를 2021년 대비 39% 개선된 0.30L/kWh까지 낮췄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실리콘 카바이드(SiC)나 질화갈륨(GaN)과 같은 차세대 전력 반도체를 도입, 시스템 전반의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AI 기술 자체가 전력망 운영의 효율을 높이는 스마트그리드 구현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는 에너지-디지털 융합 전략이 요구된다.

■ 제도적 기반 마련과 에너지-디지털 융합 전략
제도적 측면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작년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데이터센터 수요를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법적 근거가 된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과 차등 요금제 도입은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송전 손실과 비용을 줄이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어 지난달 26일부터 시행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지연되고 있는 주요 송변전 시설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건설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해안과 수도권을 잇는 500kV HVDC(초고압 직류 송전) 선로 건설 등 국가적 대형 사업의 조기 완공 여부가 AI 산업 경쟁력의 실효적 기반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AI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전력 인프라 안보를 국가 전략의 최상위 순위로 격상해야 한다.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선로 등 대형 사업에 대해 정부와 한전이 협력하여 인허가 및 건설 속도를 혁신적으로 단축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동시에 공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고 현실적인 요금체계 개편을 추진해야만 지속 가능한 인프라 투자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AI 경쟁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기를 전달하는 인프라의 속도와 유연성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필요한 곳에 가장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전력망의 지능화와 인프라 안보 전략이 국가 경쟁력의 본질로 자리 잡고 있다.

[ⓒ 예결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신하연 기자

신하연 기자

기업, 지자체 예산 결산 등의 재무 분석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