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증시, 투기자본의 '먹잇감' 되나⸱⸱⸱계엄 리스크에 '양털 깎기' 공포 확산

김용대 칼럼니스트 / 2024-12-09 20:10:13
증권가 안팎에서는 한국 증시가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소외되는 '외톨이 증시' 현상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양털 깎기(Shearing)'를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김종대 위원] 지난 3일 밤 선포된 불법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이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채 정국 혼란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 자본시장이 글로벌 투기 자본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른바 거대 자본이 저평가된 국가의 자산을 헐값에 사들이는 '양털 깎기'의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 합계는 224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계엄 선포 당일인 지난 3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2390조원과 비교해 불과 4거래일 만에 약 144조원(-5.5%)이 증발했다. 코스피 시장은 2046조원에서 1933조원으로 113조원, 코스닥 시장은 344조원에서 313조원으로 31조원이 각각 감소했다.

단기간에 사라진 144조원이라는 액수는 올해 대한민국 정부 1년 예산인 656조6000억원의 22%를 상회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단기 악재를 넘어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에 대한 신뢰 위기로 번지고 있다는 점을 더 큰 문제로 지적한다. 지난 7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불발되면서 정국 불안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점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핵심 요인이다.

주요 외신들은 한국의 경제 전망을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이번 사태는 투자자들이 주장해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거를 명확히 보여줬다"며 "한국이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높였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정치적 혼란 속에 한국과 대만 증시의 시가총액 격차가 약 1조 달러까지 벌어졌다"며 "한국 증시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크다"고 진단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환율 급등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정국 혼란에 따른 원화 가치 급락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계엄 선포 직전 141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9일 장중 환율은 1431.80원까지 치솟으며 원화 약세 기조를 이어갔다. 코스피 지수 역시 3일 2500선에서 9일 2360선까지 밀려나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상태다.

증권가 안팎에서는 한국 증시가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소외되는 '외톨이 증시' 현상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양털 깎기(Shearing)'를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 이론에서 언급되는 양털 깎기란 국제 거대 투기 자본이 특정 국가의 자산 가치가 상승할 때까지 기다렸다가(양털이 자라듯) 경제 위기나 혼란을 틈타 자산 가치가 폭락하면 이를 헐값에 대거 매입해 이익을 취하는 약탈적 투자 행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현재 한국 시장은 펀더멘탈 약화와 정치적 리스크가 겹치며 자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어 투기 자본이 진입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우려다.

iM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 경제 예외주의 현상 심화와 '트럼프 2.0' 리스크로 인해 글로벌 자금의 달러 선호 현상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취약한 펀더멘탈을 가진 경제와 금융시장은 투기 자본에 의한 양털 깎기 위험에 노출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자칫 국내 정국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 경제가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될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iM증권은 당장 국가 부도 사태와 같은 외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게 봤다. 보고서는 "국내 외환보유액 및 단기 외채 수준을 고려할 때 대외적인 단기 유동성 리스크에 빠질 위험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수출이 더 이상 우리 경제의 강력한 보호막 역할을 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심리적 위축과 금융시장 불안을 최소화해 내수 경기를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적극적인 통화 및 재정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iM증권은 "경기 부양 차원에서 원화 가치 하락에 다소 부담을 주더라도, 내년 1월 추가 금리 인하와 같은 통화 완화책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재정 역시 확장적 기조로 선회해 정부가 경기 방어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기업들의 자금 경색 위기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 정책도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추락한 국제적 신인도의 회복이다. 달러 환산 기준 코스피 지수가 2022년 3월 미국 금리 인상 사이클 충격 당시의 조정 수준까지 이미 근접한 상황에서 정치는 혼란스럽더라도 경제 시스템은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 신인도를 회복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자온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의 위기가 단순한 주가 하락을 넘어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투기 자본의 공세로부터 한국 경제를 지키는 유일한 방파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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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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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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