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골드러시’ 시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이를 구동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의 최대 메모리 공급업체인 삼성전자는 정작 시장의 중심에서 밀려나며 고전 중이다.
삼성전자는 9일 2025년 2분기 실적 가이던스를 발표하며 연결 기준 매출 74조원, 영업이익 4.6조원을 예고했다. 이는 금융정보업체들이 전망한 6.3조 원보다 약 27% 낮은 수치로, 전분기 6.69조원 대비 급감한 실적이다. 작년 4분기 2.43조 원 이후 가장 낮은 이익이다.
이번 실적 부진의 중심에는 HBM3e 수율 문제와 Nvidia 인증 실패가 자리한다.
■ HBM3e 품질 인증 '3연속 실패'…Nvidia 공급 불발
HBM은 DRAM을 수직으로 적층해 초고속 대역폭을 구현하는 기술로, 특히 AI 연산용 GPU에 필수적인 메모리다. 삼성전자는 자사의 최신 HBM3e를 엔비디아(Nvidia)의 플래그십 GPU인 'Blackwell 시리즈(B100/B200)'에 공급하기 위해 품질 인증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한국 증권가 및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6월까지 총 3차례 인증에 실패했으며, 다음 인증 기회는 9월로 예정됐다. 주요 실패 원인은 발열 및 전력 소모 문제로 추정된다.
■ SK하이닉스·마이크론, 틈새 파고든 경쟁사들
삼성의 부진은 곧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졌다. 현재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를 HBM3e의 주공급처로 삼고 있으며 마이크론은 12단 적층 HBM3e로 Blackwell Ultra B300에 탑재될 예정이다.
AMD는 삼성의 HBM3e를 일부 도입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AMD의 AI GPU 시장 점유율은 미미하다. 실제로 2024년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매출은 1152억 달러에 달한 반면, AMD Instinct 제품군은 약 50억 달러 수준이다.
■ HBM3e 다음은 HBM4…기회 남았나
삼성전자는 하반기 HBM4 양산에 착수하고 내년부터 본격 매출화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이미 HBM4 시대로 빠르게 이행 중이다. AMD의 MI400 시리즈, Nvidia의 Rubin GPU 역시 HBM4 도입을 공식화했다.
HBM4 경쟁에서는 TSMC의 CoWoS(Chip-on-Wafer-on-Substrate)와 같은 고급 패키징 기술이 핵심 변수로 떠오르며 삼성의 패키징 기술 경쟁력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왕국'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몇가지를 꼽는다.
먼저 '기술 품질 회복'이 우선이다. 발열/전력 등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지 못하면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에서도 도태될 위험이 크다.
패키징 및 테스트 기술 투자 확대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고성능 AI 반도체용 HBM은 단순한 DRAM 제조가 아닌 종합적인 시스템 통합 역량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시장 다변화 전략도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특히 엔비디아에 집중된 공급 전략에서 벗어나 AMD, 인텔, 퀄컴 등과의 협업 강화가 필요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HBM 시대를 선도하던 삼성전자가 기술력 검증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며 실적에도 직격탄을 맞았다"며 "다가오는 HBM4 시대에 삼성전자가 설욕할 수 있을지, 하반기 인증 결과와 양산 성공 여부가 향후 메모리 사업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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