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개혁 기획 中] 유통 혁신 가로막는 '제왕적 조합장'⸱⸱⸱그들만의 성(城)이 된 지역농협

신세린 기자 / 2026-01-02 16:45:43
'무소불위' 권력에 갇힌 지역 농협, 유통 혁신 대신 '표 관리'에만 매몰
상임이사 인사권부터 무이자 자금까지⸱⸱⸱'기울어진 운동장' 속 꼼수 연임 활개
"주인 없는 조직" 전락한 농협 거버넌스⸱⸱⸱24년 만의 근본적 지배구조 개혁 신호탄
"법 개정은 시작일 뿐"⸱⸱⸱전문가들, 깜깜이 선거와 금권 선거 근절 위한 실효성 확보 촉구
전국 1100여개 지역농협은 각각의 독립 법인으로서 지역 경제의 혈맥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혈맥의 정점에 있는 조합장의 권한은 가히 '제왕적'이라 불릴 만큼 막강하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신세린 기자] 전국 1100여개 지역농협은 각각의 독립 법인으로서 지역 경제의 혈맥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혈맥의 정점에 있는 조합장의 권한은 가히 '제왕적'이라 불릴 만큼 막강하다. 해당 농협의 인사권, 예산 집행권, 대출 승인권 등 거의 모든 전권을 독점한다.

문제는 이 막강한 권력이 농산물 유통 구조의 근본적인 혁신이나 농가 소득 증대라는 본연의 목적이 아닌, '재선과 연임'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산물 유통 구조를 혁신하려면 산지 수집 체계를 규모화하고 복잡한 중간 마진을 걷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 이는 기존 유통 기득권 세력이나 내부 임직원과의 마찰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조합장들에게 이러한 마찰은 곧 '표의 이탈'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조합장들은 농민들의 농산물을 제값에 팔아주는 모험적인 경제사업보다는 농협의 수익 사업인 '신용사업(대출)'에 치중하며 조합원들에게 선심성 배당을 하거나 경조사비를 챙기는 식의 '표 관리'에 매몰되고 있다.

■ '비상임'의 함정⸱⸱⸱법망을 피하는 장기 집권의 기술
현행 농협법상 상임 조합장은 2차례에 한해 연임할 수 있어 총 3선(12년)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규정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존재한다. 자산 규모가 일정 수준(2500억원) 이상인 지역농협이 '비상임 조합장' 체제로 전환할 경우, 연임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악용해 상당수 지역농협이 비상임 체제로 전환한 뒤 사실상 '무제한 연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장기 집권은 지역 사회 내에서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형성한다. 선거를 앞두고 신규 조합원을 대거 영입해 '자기 사람'을 심거나 중앙회로부터 받은 '무이자 자금'을 특정 대의원이나 유력 조합원에게 집중 배급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꼼수로 지적된다.

또한, 지역 농협의 실무를 총괄하는 상임이사나 사외이사 인사권을 조합장이 거머쥐고 있어 내부 견제 시스템은 사실상 마비된다. 선거 운동 기간이 단 13일에 불과하고 예비후보자 제도조차 없는 현행 '공공단체 위탁선거법'은 신규 도전자들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며 현직 조합장의 '철옹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에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한 농협법 개정안은 이러한 '꼼수 장기 집권'의 통로를 원천 차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상임 조합장 역시 상임 조합장과 마찬가지로 연임을 2회(총 3선)로 제한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2000년 농협 중앙회 통합 이후 가장 획기적인 지배구조 개선안으로 평가받는다. 장기 집권이 낳은 폐쇄적인 인사 구조와 유통 기득권과의 결탁을 끊어낼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 유통 혁신의 실종, 그에 따른 농민의 피해
조합장이 유통 전문가가 아닌 정치꾼으로 변모하면서 지역농협의 경제사업 경쟁력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농민들은 여전히 개별적으로 유통 상인과 협상하거나 낮은 수취 가격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다. 농협이 산지 유통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다단계 유통 구조가 유지되는 배경에는 혁신을 거부하고 기득권 유착을 묵인하는 조합장들의 '안주'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대규모 농산물 폐기 사태나 가격 폭락 시기에도 지역농협이 선제적인 수급 조절이나 판로 개척에 실패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조합장들이 중앙회나 거대 유통 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민을 위한 조직이 농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조합장 1인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결코 과하지 않다.

■ "지배구조의 근본적 수술 없이는 미래 없다"
농업 정책 전문가들은 농협의 유통 경쟁력 강화가 단순히 시설 확충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교체'와 '지배구조의 혁신'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합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선거 제도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것이다.

김기태 전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농협의 고질적인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조합장이 경제사업의 전문 경영인으로서가 아니라 지역의 소영주로 군림하는 현 구조가 지속되는 한, 농협의 유통 혁신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며 "비상임 조합장에게도 상임과 동일한 연임 제한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조합원의 눈과 귀를 가리는 깜깜이 선거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후보자의 정보 공개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혀야 한다. 조합원이 주인이 되는 민주적 통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농협의 미래는 없다"고 비판했다.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전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역시 "농협은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짓고 제값에 팔 수 있도록 돕는 경제단체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농협은 신용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과 조합장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며 "조합장이 인사권을 무기로 임직원들을 선거 운동원으로 전락시키는 행태를 근절하려면 인사 추천 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조합원에 의한 직접 감시 체계를 법제화하여 '농협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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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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