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신문=신하연 기자] 새로운 기술 혁명의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세상은 늘 젊은 세대의 손을 들어주었다. 신기술에 민망하리치만치 빠르게 적응하는 청년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변화에 더딘 기성세대는 뒤처질 것이라는 게 우리가 오랜 기간 습득해 온 상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AI)이 가져온 노동 시장의 변화는 우리의 이러한 통념을 비웃듯 정반대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AI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산업군일수록 젊은 주니어들의 일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경험을 무기로 한 시니어들의 고용은 오히려 견고해지는 이른바 '연공편향 기술변화'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최근 고용 데이터는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수치로 증명한다. 최근 4년간 15세부터 29세까지의 청년층 일자리는 28만5000개나 감소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중 무려 94%에 달하는 26만8000개의 일자리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집중적으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개 늘어났고 그중 17만3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나왔다. 기업들이 문서 작성, 단순 정보처리, 기초 데이터 분석 등 과거 청년들이 초급 단계를 거치며 경험을 쌓던 업무를 AI 자동화 시스템으로 빠르게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년이 진입할 수 있는 가장 밑단의 '경력 사다리'가 기술 앞에 잘려 나간 셈이다.
물론 최근의 청년 고용 한파를 오롯이 AI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팬데믹 시기의 과열되었던 채용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일 수 있고 기업들이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채용 관행이 더욱 확고해진 탓일 수도 있다. 또한 재택근무의 정착이 업무의 디지털화와 모듈화를 촉진하면서 AI가 침투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명제는 개별 기업이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이유로 초급 업무를 AI에 맡기는 선택을 거듭할수록 노동 시장 전체는 심각한 '인재 파이프라인의 단절'이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초급 단계에서 숙련을 쌓지 못한 청년이 어떻게 내일의 핵심 인재이자 시니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을까.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의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초급 업무 자동화가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경영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이 동시에 똑같은 선택을 내릴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미래의 숙련 인력 기근 현상은 국가 경제 전체의 뿌리를 흔들게 된다. 청년들의 진입로가 막히고 고학력 대졸 청년 실업률이 상승하는 구조적 문제를 더 이상 시장의 자율 기능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정책의 패러다임이 전면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단순히 소멸해 가는 전통적인 초급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식의 임시방편은 더 이상 해법이 되지 못한다. 청년이 AI를 단순한 경쟁자나 위협 요소로 느끼는 것을 넘어 자신의 업무를 보완하고 가치를 높이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력 사다리'를 설계해야 한다.
청년들의 뛰어난 AI 응용 역량과 기성세대가 축적해 온 오랜 현장 경험 및 직무 지식을 결합하는 혁신적인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단기적인 채용 보조금 지급 방식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실질적인 기술 숙련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경력 형성 지원금' 형태의 정책적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자본과 장비 투자에만 과도한 혜택을 주어 단순 근로자 대체만을 부추기는 조세 제도의 불균형이 없는지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청년층은 그 어떤 세대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흡수력과 적응력이 뛰어난 집단이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고 대체하는 기술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역량을 확장하고 성장을 돕는 도구로 자리 잡을 때 청년은 AI 시대 생산성 향상의 진정한 주역이 될 수 있다. 막혀버린 경력 사다리를 다시 세우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완수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예결신문 / 신하연 기자 beliga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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