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용⸱이월액 탐사] 화성시, '예산 없다'며 주민 사업 퇴짜 놓더니⸱⸱⸱천문학적 금액 '낮잠'

김지수 기자 / 2025-12-10 21:21:55
2024 결산 이월·불용액 5576억⸱⸱⸱'23년 6000억 이어 '역대급'
곳간엔 현금 2500억⸱⸱⸱남양 시도 15호선·봉담 동화공원 등 숙원사업 '올스톱'
화성시가 2년 연속 천문학적인 액수의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사장(死藏)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출퇴근길 도로 정체와 부족한 휴식 공간에 허덕이는데 정작 시청 금고에는 수천억 원의 혈세가 잠자고 있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김지수·백도현 기자] 경기도 내 재정자립도 1위, 전국 기초지자체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화성시. 그러나 이 같은 '부자 도시'의 외형 뒤에는 무능한 재정 운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10일 예결신문이 경기 화성시의 '2023~2024 회계연도 결산서'를 심층 분석한 결과, 시는 2년 연속 천문학적인 액수의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사장(死藏)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출퇴근길 도로 정체와 부족한 휴식 공간에 허덕이는데 정작 시청 금고에는 수천억 원의 혈세가 잠자고 있었다.

■ '24년 5500억 '낮잠'⸱⸱⸱'습관성 이월' 고착화
시의 2024년 총예산은 3조4071억원 규모다. 하지만 시가 작년 한 해 다 쓰지 못하고 남긴 돈은 총 5576억 원에 달한다. 이는 예산 현액 대비 집행 잔액 비율이 경기도 내 타 지자체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사 지연 등 부득이한 사유로 해를 넘겨 사용하는 '이월액'은 4078억원, 아예 사업을 포기하거나 집행 잔액으로 남은 '불용액'은 1498억 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다음 연도로 이월되지 않고 순수하게 쓰고 남은 현금인 '순세계잉여금'만 2567억 원에 달한다.

시 관계자는 "대규모 공사 지연과 보상 문제, 원자재값 상승 등이 겹쳤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매년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시가 막대한 잉여금을 쌓아두는 동안 정작 주민들이 요구한 '생활 밀착형 예산'은 가차 없이 삭감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는 2024년 예산 편성 당시 "세수 감소에 따른 긴축 재정이 불가피하다"며 주민들이 직접 제안한 '주민참여예산' 다수를 삭감하거나 후순위로 미뤘다. 마을 안길 CCTV 설치, 노후 경로당 개보수,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펜스 정비 등 수천만 원 단위의 소규모 숙원 사업들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 '23년은 더 심각⸱⸱⸱개선 의지 있나
1년 전인 2023회계연도 결산 당시 상황은 더욱 심했다. 당시 시의 미집행 예산인 이월액은 4277억원, 불용액은 1689억원으로, 총액은 무려 6000억원에 육박했다.  당시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송선영 의원은 "관행적인 예산 편성 후 방치하는 행태를 근절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행태는 작년에도 이어져 시 집행부의 개선 의지가 아예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온다.

특히 2023년 5966억원에서 작년 5576억원으로 감소한 것도 재정 효율화의 결과가 아니다. 본지 취재 결과, 시는 남는 돈을 눈에 덜 띄는 '통합재정안정화기금' 등으로 적립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잉여금을 줄이는 '회계 기술'을 쓴 정황도 포착됐다. 결국 본질적인 집행률 제고 노력 없이, 장부상의 숫자만 만지작거린 셈이다.

■ 남양 '시도 15호선'·봉담 '동화공원' 사업 집행 '낙제점'⸱⸱⸱피해는 시민이
막대한 잉여금의 주범은 역시 대규모 SOC 사업이었다. 시는 신도시 개발과 구도심 정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지역 특성상 도로 개설, 공원 조성 예산 비중이 높다. 하지만 이들 사업의 집행률은 낙제점에 가깝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양읍의 '시도 15호선(활초~신남) 도로확포장공사'다. 서부권 교통난 해소를 위해 수십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시의 소극적인 보상 행정으로 토지주와의 협의가 공전하며 예산 대부분을 또다시 내년으로 넘겼다(명시이월). 주민들은 "도로 뚫어준다더니 땅값 흥정만 하다 세월 다 보낸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수년째 요구해 온 봉담, 향남 등지의 근린공원 조성 사업들은 환경영향평가 협의 지연, 문화재 시굴 조사 등의 암초를 만나 예산을 쥐고만 있는 실정이다. 

시 관계자는 "행정 절차가 까다로워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무리한 일정으로 예산부터 확보한 '선점식 행정'이 원인이라는 비판이 우세하다. 주민들은 "희망 고문도 정도껏 하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신도시 지역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구도심 주민들에게 이 같은 예산 방치는 행정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있다.

■ 돈이 넘쳐나는 '교통사업특별회계'
일반회계뿐만 아니라 '특별회계'에서도 돈맥경화 현상은 뚜렷했다. 특히 시민들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쓰여야 할 '교통사업특별회계'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다.

이 회계는 주차장 건립, 교통 시설 개선 등을 위해 쓰이는 돈이다. 시는 각종 개발 사업에 따른 교통유발부담금 등으로 막대한 수입을 거두고 있지만, 정작 주차장 확보나 대중교통 개선 사업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동탄권역의 한 공영주차장 조성 사업은 부지 선정 난항으로 2년째 예산이 이월되고 있다. 시민들은 주차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주차장 지을 돈은 특별회계에 갇혀 전혀 움직이질 않는 기막힌 상황이다.

자료=화성

■ "계획 없는 예산 편성, 의회 기능도 마비"
전문가들은 시의 이러한 행태를 '행정 편의주의의 극치'라고 비판한다. 예산을 편성할 때 사업의 실현 가능성과 시기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일단 '확보'부터 하고 보자는 식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월액이 전체 예산의 10%를 넘나드는 것은 예산 수립 단계부터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증거다. 특히 순세계잉여금이 2500억원 넘게 발생했다는 것은 시가 걷어들인 세금을 시민을 위해 쓸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으로 비유하자면 '투자는 안 하고 현금만 쌓아두는' 꼴이다.

시의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매년 행정사무감사와 결산 심사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본예산 심의 때는 집행부가 올려준 부실한 사업 계획에 예산을 승인해 주는 '거수기' 역할을 반복하고 있다. 시의회는 2024년도 예산안 심의 당시에도 대규모 불용이 예상되는 사업들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출처
• 2024회계연도 화성시 세입·세출 결산서
• 화성시 2024년도 예산성과보고서 & 주요 업무계획
• 화성시의회 정례회 회의록 (행정사무감사 및 결산검사)
• 지방재정365 공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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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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