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하반기 한국 자동차산업의 시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4월부터 미국 수입 자동차와 핵심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수년간 누려온 북미 수출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이에 완성차 기업은 해외 투자 확대와 프리미엄 모델 전략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협상력이 약한 부품업체는 실적 악화와 재무불안에 직면하며 '부실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 현대차·기아, 관세 방어는 가능⸱⸱⸱그러나 ‘가격 전가’가 해법은 아니다
현대차·기아는 올 상반기 글로벌 시장에서 365만 대를 판매하며 전년 대비 소폭(+0.9%) 증가한 실적을 기록했다. 판매량은 정체됐지만 평균판매단가(ASP) 상승과 SUV·제네시스 중심의 고부가 차량 확대, 환율 효과 등에 힘입어 영업이익률 9.9%라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의 매출 비중이 40%를 넘는 이들 완성차 기업은 25% 관세에 상당 부분 노출돼 있다. 2024년 기준 미국에 판매한 차량 171만 대 중 약 67%가 한국·멕시코 등 관세 적용 대상 생산지에서 수입됐다. 특히 기아는 전체 80만 대 중 53만 대가 관세 리스크 대상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21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현지 투자를 단행해 생산량을 최대 121만 대까지 늘릴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2024년 미국 판매량의 70%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중장기적으로 관세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다.
■ 부품사, ‘가격 전가’ 못해…줄줄이 신용등급 하향
반면, 자동차 부품사들은 상황이 심각하다. 현대차의 관세 부담이 전가될 경우, 낮은 영업이익률(5% 미만)을 가진 부품사들은 이를 흡수할 여력이 없다. 실제로 아진산업, 서진캠, 핸즈코퍼레이션 등은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전망이 ‘부정적’으로 전환됐다. 특히 핸즈코퍼레이션은 B등급에서 B-로 하향됐다.
이러한 신용악화는 단기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동화 전환을 위한 설비투자(CAPEX) 증가, 친환경차 부품 기술개발에 따른 고정비 부담, 규모의 경제 미달성 등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다. 실제로 부품업체들의 순차입금은 증가세를 보이며 재무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한온시스템, 최대주주 바뀌어도 ‘수렁’…한국타이어가 ‘구원투수’ 될까
AA- 등급이지만 ‘부정적’ 전망이 붙은 한온시스템은 부품사 위기의 상징처럼 보인다. 전기차 핵심 부품 공급사로 성장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고객사 주문 감소와 고정비 부담 증가, 일회성 비용까지 겹치며 실적이 크게 흔들렸다. 올 1분기 기준 '순차입금/(EBITDA-배당금)' 비율이 4.8배에 달해 등급 하향 기준을 넘고 있다.
다만, 작년 최대주주가 한국타이어로 변경되며 사업적 시너지와 재무적 지원 가능성은 기대요인이다. 한국타이어는 마이너스(-) 순차입금 상태를 유지할 정도로 양호한 재무구조를 갖췄다. 향후 이 자금력이 한온시스템의 구조개선에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EV 판매 증가 속 전환투자 ‘딜레마’…성장은 하나, 수익은 둘
현대차·기아의 친환경차 판매는 성장세다. 올 1분기 기준 전체 판매의 20% 이상이 친환경차였고, 특히 기아 EV3는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순위 5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환이 모든 업체에 ‘희망’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다.
부품사 입장에서는 친환경차용 부품 기술 개발과 라인 전환에 대한 선투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연구개발과 생산설비 투자에 필요한 자금은 곧바로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고, 수익성은 악화되기 쉽다. 완성차의 친환경차 확대 전략이 부품사에는 '수익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관세가 보여준 구조적 리스크…공급망 전환과 상생전략 시급
결국 이번 관세 사태는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리스크를 드러낸 사건이다. 완성차 기업은 해외 생산과 제품 전략으로 방어할 수 있지만, 부품사는 개별 대응이 어렵고 외생 변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지금이야말로 부품사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공급망 재편, R&D 공동화, 재무지원 프로그램 등 산업 차원의 상생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 하반기 자동차산업은 ‘고속도로’와 ‘험로’가 동시에 펼쳐진 양극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완성차 기업은 글로벌 전략으로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기려 하지만, 부품사는 대책 없는 비용 전가와 투기등급 악순환 속에 침몰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 아닌 ‘상생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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