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통상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한국 언론과 일부 정치권 특히 국민의힘에서 ‘일본의 협상 사례’를 거론하며 “우리도 미국과 빨리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이 체결한 관세 15%를 넘기면 실패”라며 잔뜩 칼을 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실체를 모르는 무지한 주장이며 국익을 포기한 굴종적 사고다.
■ 일본, 760조 외에도 다 퍼줬다
일본은 미국과 협상에서 관세를 15% 낮추는 대가로 무려 5500억 달러(한화 약 760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 약속을 했다. 처음엔 일본 자국 내에선 “성공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잠시 주가가 뛰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어처구니없는 조건이다. 760조원 투자도 일본 스스로 이른바 ‘돈 될만한’ 부문에 투자하는 게 아닌 미국-일본 합자 투자 펀드에 넣어야 한다. 게다가 투자처도 미국이 정한다. 또한, 투자 이익의 90%는 미국에 재투자해야 한다. 한마디로 조폭도 이런 조폭이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항공기 구매, 농축산물 개방, 무기 수입, 알래스카 가스 탐사까지 전방위적인 미국 퍼주기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일본 내에서도 “치명적인 오판”이라는 비판이 확산하며 주가가 다시 빠졌다.
일본이 당초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에 따라 얻을 이익은 최대 150억 달러(약 20조원)으로 추산된다. 760조원의 2.6%, 이자도 안 나오는 푼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협상안을 기준 삼아 한국도 ‘15% 관세선’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일본은 이미 제조업이 쇠퇴했고 협상에서 별다른 실질적 카드를 갖고 있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조선업, 반도체, 전략 물자, 지정학적 요충지 등 미국에 꼭 필요한 협상 카드를 갖고 있다.

■ 한국에 ‘4000억불 투자’ 요구? 받을 수 없는 ‘조폭 딜’
현재 미국은 한국에 4000억 달러(약 552조원) 규모의 직접 투자를 요구하며, 상호관세 협상 조건으로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지도 데이터 반출까지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일방적 요구는 ‘우방국 간 협상’이 아닌 강압이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한국의 ‘2000억 달러(276조원) 투자 제안’을 거부하며 “모든 걸 가져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요구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 정부가 협상을 중단하고 돌아서야 할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실제 한국 정부는 “8월 1일까지 타결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미국은 한국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몰아붙이고 있다. 우방국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차라리 상호관세를 때려 맞는 게 낫다”는 격앙된 반응도 보였다. 사실 일본처럼 밑지는 장사를 할 바엔 그 돈을 국내에 투자하는 게 이득이라는 주장이 틀린 것도 아니다.
■ 한국도 카드 많다···굴욕 대신 전략으로 맞서야
한국은 이번 협상에서 수세적으로 끌려갈 필요가 없다.
먼저 조선업이다. 미국은 군함과 해양 패권 경쟁에 필요한 조선 공급망을 복원하려 한다. 한국은 ‘MASGA(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 제안하며 대안 없는 협력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반도체도 있다. 한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국가 중 하나다. 미국이 관세로 협박할 수 없는 분야이며 오히려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 압박을 받는 위치다.
이런 협상력을 바탕으로 한국은 더 이상 퍼주는 협상이 아니라 전략적 균형을 맞추는 협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과 언론은 정부가 국익을 지키는 데 필요한 ‘버티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
언론은 ‘8월 1일 이전 타결’만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협상을 걷어차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끝까지 받아들이면, 향후 어떤 협상에서도 같은 방식의 압박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만일 협상이 결렬돼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다면, 그것은 한국이 ‘퍼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지 외교 실패가 아니다. 정당한 거절이 곧 외교력이며, ‘굴욕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외교’는 아니다.
정치권과 언론은 냉정해져야 한다. 일본과 같은 ‘굴욕 딜’을 기준 삼아 한국 정부에 협상 타결을 압박하는 것은 자해적 논리다. 정부가 국익을 지키기 위해 협상장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도록 국민과 언론이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퍼주기’가 아닌, 동맹다운 상호 존중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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