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임대차 시장이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두 자릿수 상승을 기록한 것에 비해 전세 상승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정부는 대출 규제와 대규모 공급 확대 방안을 병행하고 있지만, 정비사업 지연과 공사비 급등, 3기 신도시 사업 지연 등 구조적 제약이 겹치며 단기간 수급 개선은 쉽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 월세, 매매·전세 상승률 ‘추월’···수도권 전세매물 20%대 감소
8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1.0% 상승했다. 같은 기간 매매가격 지수는 7.8%, 전세가격 지수는 3.6% 오르는 데 그쳤다. 경기도 역시 월세가격지수가 8% 상승하며 매매(0.4%)와 전세(2.4%)를 크게 상회했다. 비아파트도 상승세가 지속돼 2023년 중반 이후 서울·인천의 연립·다세대 월세 지수 상승률은 2015년 통계 개시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공급 측면에선 전세매물 부족이 두드러진다. 민간 플랫폼 집계에 따르면 8월 서울 전세 매물은 2.3만 호로 연초 대비 27% 감소, 경기도 역시 2.2만 호로 29% 각각 감소했다. 전세 수급 지수(100 초과 시 수요 우위)는 서울 152pt까지 치솟아 2021~22년 급등기에 근접한 흐름을 보였다.
서울 주요 대단지의 월세는 체감 상승 폭이 크다. 송파 헬리오시티(84㎡) 월세는 368만원, 실제 시세는 보증금 2~3억 원에 월 300만원 중후반대가 형성됐다. 마포 래미안푸르지오(84㎡)는 월세 331만원, 실제는 보증금 2억원에 월 300만~350만원이 일반적이다. 이들 단지의 캡레이트(월세/(매매가-월세보증금))는 2%대에 불과해 임대인의 월세 선호가 강화되는 구조다.
■ 전세 기능 ‘축소’···전월세 계약, 월세 비중 56.5%
iM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전체 주택 전월세 계약 중 월세 비중은 올해 56.5%로, 2020년 38.9%에서 17.6%p나 뛰었다. 아파트만 보면 전국 전세 55.2%·월세 44.8%, 서울은 전세 57.2%·월세 42.8%로 전세 비중이 아직 우세하지만, 추세적으로 월세 비중 확대가 뚜렷하다.
그 배경에는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 2+2년, 갱신임대료 5% 상한)으로 전세보증금 인상 탄력 약화 ▲전세 사기 급증에 따른 신뢰 저하 ▲전세대출 보증 규제 강화 등이 복합 작용했다. 임대인은 금리 하락 국면·전월세전환율 상승을 감안해 월세 선호가 합리적이고, 임차인은 전세대출 문턱이 높아지며 전세 진입이 어려워졌다.
■ 전세 사기·대출 규제 쇼크···‘126% 룰’ 전면화
전세보증보험 사고는 2021년 이후 급증했다. 2023년 보증사고액 4.3조원, HUG 대위변제액 3.5조원, 2024년 보증사고액도 4.5조원을 기록했다. 올 6월 기준 특별법 피해 인정은 3만400건으로, 다세대 30.3%·오피스텔 20.8%·다가구 17.8%·아파트 14.2% 순이었다. 피해 금액은 7000만~1억원 구간이 76.1%로 가장 많다.
이에 대출·보증 규제는 연쇄적으로 강화됐다. 6월 HUG 보증비율 100%→90%, 7월 수도권 80%**로 하향됐으며 여기에 ‘126% 룰’(공시가격의 126% 초과 시 보증 제한)이 HUG 2023년 5월, HF 2025년 8월 28일부터 적용됐다. 예컨대 공시가격 5억원(시세 7.1억원 가정) 주택에서 LTV 40% 대출이 있을 경우, 보증 가능한 전세보증금 한도는 약 3.5억원으로 축소된다. 서울 기준 가격대별 한도 축소 폭은 -0.5억~-1.1억원(6·8·10·12억 시세 구간)으로 추정된다.
보증 조건(요약)은 HUG/HF/SGI 보증대상 수도권 7억·지방 5억, 보증비율 90%(수도권 80%), 보증료 연 0.04~0.26% 수준이다. 규제 강화로 은행권 전세대출 잔액은 2025년 8월 123.6조 원, 전월 대비 +0.18% 증가에 그쳤고, 증가세가 둔화됐다.
■공급 병목···정비사업 지연·공사비 급등·안전·노동 변수
서울 주택보급률은 93.6%(가구 414만·주택 317만 호)로 전국 102.5% 대비 낮다. 주택 유형은 전국 기준 아파트 61%, 단독 18%, 다세대 11%, 오피스텔 6%, 연립 3% 구성이며, 서울은 아파트 54%·다세대 24%·오피스텔 10% 비중이다. 1인당 주거면적은 아파트·단독·연립 9.0~9.2평, 오피스텔 7.2평, 다세대 6.7평으로 질적 격차도 존재한다.
입주 물량은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국면이다. 2025년 전국 아파트 입주 17.2만 호(-24% YoY). 서울은 4.3만 호(+52%)로 보이지만, 청년안심·행복주택 등 공공 1만 호 제외 시 3.3만 호 수준이다. 내년에는 입주 감소가 더 두드러질 전망이며, 2027년 이후도 연간 20만 호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서울 신규 공급의 70~85%가 정비사업에서 나온다. 그러나 작년 정비사업 평당 공사비 전국 770만원, 서울 843만원으로 2021년 이후 약 48% 상승했다. 올해 입찰 예정 사업지 공사비는 평당 1100만원 이상 제시 사례가 늘며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조합설립인가 264곳, 사업시행인가 100곳, 관리처분 48곳(재건축 기준) 등 진행 단지는 많지만, 조합·시공사 간 분담금·공사비 갈등으로 속도가 느리다.
■ 3기 신도시·신규 택지 첫 입주 2026년···대규모 입주는 2030년 이후
3기 신도시는 총 18.6만 호 규모로 2018~19년 발표됐으나 토지 보상 지연으로 일정이 후퇴했다. 최초 입주 내년 인천 계양 1285가구, 2027년 고양 창릉·남양주 왕숙 등 9614가구이며 약 4.8만 호는 2030년 이후로 밀린다.
남양주 왕숙 2개 지구·등 3곳은 보상 미완, 민간 분양은 2025년 8월 왕숙 1147세대(대우건설)가 첫 사례로, 본격화는 2027년 이후다. 광명시흥·안산장상 등도 본청약이 각각 2029년·2027년 10월로 지연됐다. 실입주는 2032년 이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지난 6월 27일 수도권 주담대 한도 6억원 제한으로 과열 완화를 시도했고 9월 7일 2026~30년 수도권 135만 호(연 27만 호), 서울 33.4만 호(연 6.7만 호) 공급 목표를 제시했다. 6.27 이후 서울 매매 거래량·상승률은 상반기 대비 둔화됐다. 다만 민간 사업성 악화를 고려하면 목표치의 착공·입주 전환은 가시성 확보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 서울 인구 순유출에도 ‘잠재 수요’ 여전
서울 인구는 2019년 1001만 명→2025년 6월 960만 명(-41.5만 명)으로 감소했으나, 경기도는 54만 명 증가했다. 높은 주거비로 외곽 이주가 진행된 결과다. 다만 양질의 주택이 제한된 핵심지 선호가 지속되며 수요의 탄력성은 유지되고 있다. 자치구별로 강동(+6.2만), 강남(+1.2만) 증가가 관찰되는 반면 노원(-4.5만), 강서(-4.0만), 도봉(-3.1만) 등에서 감소 폭이 컸다.
이를 종합하면 전세 사기·대출 규제 강화 → 전세 신뢰 하락, 정비사업 지연·공사비 급등·신도시 지연 → 공급 병목, 전세 매물 축소·월세 수요 집중 → 월세 상승이라는 연쇄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 한 전문가는 “금리 인하 국면이 본격화될 경우 월세 부담 회피 수요가 매매로 전이되며 집값 상방 압력이 동반될 소지도 있다”며 “정책적으로는 공사비 현실화, 인허가 간소화, PF 정상화가 필요하고 보증·대출 제도의 안전성과 접근성 균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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