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량 반토막 K-조선, ‘기술력’ 내세워 업황 둔화 넘는다

백도현 기자 / 2025-07-08 18:33:24
상반기 글로벌 발주량 48% 급감⸱⸱⸱'슈퍼사이클' 종료, 관망세 확산
고선가 물량 인도 본격화에 HD현대중공업 실적 개선 뚜렷
미 함정 MRO 시장 개방에 친환경 기술 우위 확보 절실
한국 조선업이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는 사상 최고 수준의 수주 잔고와 안정된 실적 개선세를 기반으로 신용등급 상향까지 이뤄냈지만, 글로벌 발주 급감과 중국의 급부상, 미중 통상 갈등이라는 외부 변수 속에서 하반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 모습이다. (일러스트=예결신문)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한국 조선업이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환기에 진입했다. 2021년부터 이어온 연평균 5700만 CGT 규모의 발주 '슈퍼사이클'이 일단락되고, 하반기부터는 선주들의 관망세가 짙어지는 국면이다.

8일 조선·해양 전문 리서치 기관 클락슨(Clarkson)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누적 글로벌 발주량은 1500만9000 CGT로 전년 동기 대비 48% 급감했다.

이 같은 급락은 지난 수년간의 대규모 발주에 따른 기저효과에 더해 미국의 통상 정책의 불학실성이 커지며 글로벌 선주들이 의사결정을 늦춘 결과로 풀이된다.

신조선가 지수 역시 하향 안정화 추세다. 작년 말 정점을 찍은 이후 대부분의 선종에서 가격 조정이 나타나고 있으며, 올 상반기 내내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등 일반 상선의 발주 감소폭이 컸던 반면, 고부가가치 가스 운반선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견고한 흐름을 유지했다.

■ 실적 개선 본격화⸱⸱⸱HD현대중공업 신용등급 상향 등 재무 지표 호조
전체적인 업황 둔화 우려에도 국내 주요 조선사들의 재무 지표는 뚜렷한 개선세를 나타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작년 별도 기준 매출액 14조3210억원, 영업이익 702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1778억원) 대비 4배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

이에 따라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는 HD현대중공업의 신용등급을 기존 'A(긍정적)'에서 'A+(안정적)'로 상향 조정했다.

실적 반등은 과거 수주한 '질 좋은 잔고'가 매출로 인식되면서다. 작년 말 기준 HD현대중공업의 수주 잔고는 46.9조원으로, 최근 3년 평균 매출의 약 4배에 달한다. 2021년 이전의 저선가 물량이 소진되고, 신조선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던 2022~23년의 고선가 계약 건들이 본격적인 건조 및 인도 단계에 진입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상승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 역시 흑자 전환 이후 분기별 영업이익 폭을 확대하며 수익성 중심의 경영 성과를 내고 있다.

자료=현대중공업

■ 친환경 선박 시장의 명암⸱⸱⸱중국의 물량 공세 속 기술 격차 유지 '사활'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의 주도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클락슨 데이터에 따르면 8000TEU 이상 친환경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중국 조선소는 전체 487척 중 362척(74%)을 수주하며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했다. 중국은 국가 차원의 보조금 지원과 대규모 설비 확충을 통해 컨테이너선 물량을 휩쓸고 있다. 반면 한국 조선사는 같은 기간 87척 수주에 그치며 경쟁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등 초고부가 시장에서는 한국의 입지가 견고하다. 한국의 LNG선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암모니아 및 수소 기반 차세대 연료 추진선 기술력에서도 중국 대비 약 1~2년의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다.

산업계에서는 하반기 수주 전략이 단순 물량보다는 선별 수주를 통한 이익률 극대화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미국 함정 MRO 시장 개방⸱⸱⸱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공급망 재편 기회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은 한국 조선업에 새로운 기회로 떠올랐다. 미국 해군은 자국 내 조선업 인프라 약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 조선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 함정 정비·유지·보수(MRO) 사업의 외주화 확대는 상선 위주의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는 핵심 카드다.

한화오션이 미국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 인수를 추진하고 HD현대중공업이 미 해군 함정 수리 사업 참여를 위한 인증을 획득한 것은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함정 MRO 사업은 경기 민감도가 높은 일반 상선 부문의 의존도를 낮추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매출원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미국 내 강력한 노조와 법적 규제, 초기 설비 투자 부담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또한 미국이 중국산 선박에 대해 추진 중인 보편 관세 도입 등이 글로벌 해운 업계의 발주 심리를 추가로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 하반기 수익성 방어의 최대 변수⸱⸱⸱환율 하락과 노무비 상승 리스크
하반기 실적을 좌우할 변수는 환율과 원가 관리다. 작년 말 달러당 1470원에 달했던 환율은 올 6월 말 기준 1350원대로 하락하며 원화 강세 기조를 보이고 있다. 달러 결제 비중이 절대적인 조선업 특성상 환율 하락은 수출 이익률 둔화로 직결된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 3사는 환헤지 비율을 상향 조정하며 대외 변수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력 부족에 따른 노무비 상승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외국인 인력 투입이 가속화되면서 생산 가동률은 회복세에 있으나, 숙련공 부족에 따른 공정 지연 가능성과 안전 관리 비용 증가는 수익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또한 철강재 등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사 협상 결과에 따른 인건비 가이드라인이 하반기 실적의 마지막 변수가 될 전망이다.

표=예결신문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조선업은 외형 확대가 아닌 기술 기반의 '질적 성장' 시험대에 올랐다"며 "LNG와 암모니아 추진선 등 차세대 선박의 실증 역량과 미국 함정 MRO 시장 안착 여부가 향후 10년의 시장 지위를 결정할 핵심 지표"라고 분석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또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초격차 기술 확보와 더불어 현지 생산 기지 최적화 등 공급망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예결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백도현 기자

백도현 기자

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