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조원 재무 개선 노력?⸱⸱⸱한전 발표가 '화려한 말잔치'인 까닭

김지수 기자 / 2025-11-13 17:41:57

한국전력이 13일 발표한 3분기 실적 자료에서 "올해 3분기까지 누적 3조5000억원의 재무 개선 노력이 영업실적 개선에 기여했다"며 또 한 번 '고강도 자구노력'을 앞세웠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그 비용과 부담의 상당 부분이 국민과 국가 재정, 그리고 다른 계열사·출자회사에 전가된 구조다. (사진=AI생성)

[예결신문=김지수 기자] 한국전력이 13일 발표한 3분기 실적 자료에서 "올해 3분기까지 누적 3조5000억원의 재무 개선 노력이 영업실적 개선에 기여했다"며 또 한 번 '고강도 자구노력'을 앞세웠다. 숫자만 보면 스스로 살을 깎아낸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3조5000억원이라는 숫자에는 전기요금 인상, 국제 연료가격 하락, 정부의 세제·환경 규제 완화 등이 뒤섞여 있다. 사실상 그 비용과 부담의 상당 부분이 국민과 국가 재정, 그리고 다른 계열사·출자회사에 전가된 구조다.

한전은 이날 올 3분기 누적 기준 연결 매출액 73조7465억원, 영업이익 11조5414억원을 기록했고 별도기준으로는 매출액 72조4684억원, 영업이익 5조536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5%, 영업이익은 94.1%나 증가했고 특히 9개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이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누적적자는 별도기준 39조원이다. 부채는 118조6000억원, 부채비율은 490%에 달한다.

한전은 재무 개선 효과 3조5000억원 가운데 약 1조6000억원은 한전 자체의 비용 절감, 약 1조9000억원은 전력그룹사 차원의 예산·사업 정비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 안에는 설비 점검 기준을 조정하고, 긴축예산을 편성하고, 일부 투자사업의 시기를 뒤로 미루는 조치 등이 포함돼 있다.

표면상으로는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숫자가 전체 실적 개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절대적이지 않다. 한전 실적을 움직인 더 큰 축은 따로 있다.

■ 흑자 전환의 엔진은 '요금 인상'과 '연료비 하락'
앞서 한전은 작년 연결 기준으로 8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4년 만에 흑자로 돌아선 이후 연속 영업흑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표면만 보면 자구노력이 결실을 본 듯한 모양새지만,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흑자 전환의 1차 동력은 요금 인상과 연료비 하락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이뤄진 전기요금 인상으로 판매단가는 꾸준히 올랐다. 전기요금 단가 상승과 판매량 증가가 겹치면서 전기판매수익은 수조 원 단위로 늘어났다. 동시에 국제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면서 유연탄·LNG 등 발전 연료비가 줄었고 민간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오는 전력구입비도 크게 감소했다.

실제 한전은 올해 영업비용을 대폭 줄였는데 그중 연료비 절감 2조8150억원, 구입전력비 절감 2130억원 등 원가 측면에서 3조원이 넘는 비용을 아꼈다.

요약하자면, 한전의 실적 개선은 '요금 인상으로 들어오는 돈은 늘고 연료·전력구입비는 국제 가격 하락 덕에 줄어든' 환경에서 개선된 탓이다. 자구노력의 성과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실적을 끌어올린 주력 엔진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냉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 어디까지가 '자구노력'인가…경계가 흐릿한 항목들
한전이 홍보하는 자구노력 목록을 보면,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전력시장·제도 개선을 통한 전력구입비 절감, 둘째는 설비·업무 효율화와 투자 조정, 셋째는 인건비·조직·자산 구조조정이다.

앞서 설명했듯,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한전 내부의 경영 개선이라기보다 정부와 국회의 정책 판단에 기대고 있는 조치라는 점이다. 발전용 연료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의 탄력적 운용,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제(RPS) 정산 방식 조정 등은 전형적인 정책 결정이다. 

이는 세 부담의 구조, 환경 규제의 강도,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그 비용은 요금 인상이라는 방식으로 소비자가, 세제·환경 완화라는 방식으로 국가 재정이, 정책 리스크라는 형태로 사회 전체가 각각 나눠 부담하고 있다.
 
■ 계획의 절반도 못 간 자산 매각···남서울본부·인재개발원·해외 발전소
재정건전화 계획의 또 다른 축은 대규모 자산 매각이다. 한전은 몇 년 전부터 5개년 재무개선 계획을 내놓으며 국내외 자산 매각을 통해 수조원 규모의 현금 유입을 약속했다.

대표적인 국내 자산이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 부지와 노원구 공릉동 인재개발원 부지다. 두 곳은 모두 규모가 크고 입지가 좋아 "팔기만 하면 바로 재무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상징적인 매각 대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남서울본부는 지하에 변전소가 자리 잡은 특수 부지다. 변전시설을 어디로 옮길지, 여의도 금융지구 개발 계획과 어떻게 맞춰 갈 것인지가 풀리지 않으면서 본격적인 매각 절차는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

인재개발원 부지는 연구용 시설과 송전설비, 개발 방식에 대한 지자체·정부·한전 간 의견 차이가 얽혀 있다. 도시계획 구상만 여러 번 제시됐을 뿐, 실제 매각에 이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행정·기술적 절차가 산적했다.

해외 발전자산 매각도 순탄치 않다. 필리핀 석탄화력발전소, 요르단 가스복합·풍력발전소, 해외 지분 투자 등은 여러 차례 입찰이 시도됐지만 유찰이 반복됐다. 글로벌 탈탄소 흐름 속에서 석탄·가스 자산에 과감히 투자하려는 인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한전이 약속했던 자산 매각 계획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여전히 '계획'으로만 존재한다. 부채와 이자가 쌓여가는 속도에 비해 구조적 처방은 아직 체감될 만큼 진행되지 못했다.

■ 부채 100조 넘는 한전⸱⸱⸱그 와중에 배당 재개와 출자회사 배당 확대
한전의 재무 상태는 여전히 버겁다. 영업실적이 흑자로 돌아섰다 해도 그동안 쌓인 누적 적자와 부채는 여전하다. 부채는 100조원을 훌쩍 넘고, 차입금 잔액은 86조원에 달해 하루 이자비용만 73억원이 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은 2024년 실적을 바탕으로 올 상반기 4년 만에 배당을 재개했다. 주당 213원, 총 1367억원이다. 흑자 전환이 이뤄지자마자 내놓은 조치다. 한전 지분은 한국산업은행 약 32.9%, 기획재정부 약 18.2%로 약 51%를 정부 및 공공기관이 보유했고 국민연금공단이 약 9%다. 한마디로 전기요금 인상 수익의 절반을 정부에 돌려준 그림이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가계·기업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전기요금과 연료비 환경 개선 덕을 본 한전이 다시 배당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이게 진정한 자구 노력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출자회사 배당 확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일부 출자회사는 사업 확장과 투자로 부채가 눈에 띄게 늘었는데, 정작 한전에 지급하는 배당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사 재무개선을 위해 자회사에서 더 많은 현금을 끌어오는 구조가 반복될 경우, 출자회사 자체의 건전성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자구노력은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며 한전이 앞으로 설득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다. 전기요금 인상의 부담을 떠안는 국민,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회 전체다. '누적 3조5000억원 재무 개선'이라는 말 잔치로 자신을 포장하기보다, 투명한 설명과 사업 재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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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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