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지자체 재난관리기금 본예산 편성 실태···안전 예산도 '관행적 후순위'

김민준 기자

livekmin@hanmail.net | 2026-06-02 15:19:40

안양·김포·홍성, 올해 본예산 적립 '0원'···지방선거 후 추경 미루기 관행 여전
광주 4년·강원 3년 연속 법정 기준 미달···"돈 없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 밀린 탓"
최저 기준 채우려 '공무원 패딩' 구입 편법까지···현실 반영한 제도 개편 시급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관리 의무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법으로 규정된 '재난관리기금'의 일선 지자체 본예산 편성이 심각하게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당수 지자체가 예산 편성의 우선순위에서 재난예방 경비를 후순위로 밀어두거나 추경예산을 통해 메우는 편법적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김민준 기자]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관리 의무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법으로 규정된 '재난관리기금'의 일선 지자체 본예산 편성이 심각하게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당수 지자체가 예산 편성의 우선순위에서 재난예방 경비를 후순위로 밀어두거나 추경예산을 통해 메우는 편법적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의무 지출 비율을 맞추기 위해 무관한 비품을 구매하는 등 예산 낭비 사례까지 적발되면서 재난관리기금의 법적 적립 기준과 운용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전국 지자체 2026년도 재난관리기금 일반회계 전출금 본예산 편성 현황 전수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법정 최저적립액을 채우지 못하거나 아예 단 한 푼도 편성하지 않은 지자체가 다수 확인됐다.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각 지자체는 최근 3년간 보통세 수입결산액 평균연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년 최저적립액으로 의무 적립해야 한다. 이를 본예산에 계상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법령 위반이자 행정안전부의 훈령을 위반한 행위다. 

현행 행정안전부 훈령인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에 따르면 법령에 따라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법정·필수적 경비는 세출예산에서 우선 계상해야 한다. 법적 의무와 페널티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들이 관행적으로 과소 편성을 되풀이하는 것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재난예방 기금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음을 드러낸다. 

'재정 부족'은 핑계…재난 예방 예산 뒷전으로 모는 지자체의 비정상 행정
2026년도 본예산에서 재난관리기금 일반회계 전출금을 단 한 푼도 잡지 않은 지자체는 경기도 안양시와 김포시, 충남 홍성군 등 세 곳이다. 이 중 안양시는 5월 현재 추경을 통해 뒤늦게 재난관리기금을 확보했으나 김포시와 홍성군은 하반기 지방선거 이후 추경 때나 기금을 편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 세 지자체의 미편성 사유는 재정 자립 능력 부족이 아닌 행정 편의주의적 순위 조정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행안부의 지자체 재정분석 기준에 따르면 안양과 김포는 인구 규모와 재정력이 상당 수준 확보된 '시-1' 유형에 속하며, 홍성군 역시 '군-1' 유형에 해당한다.

김포시의 경우 재정력지수가 0.768로 도내 평균보다는 다소 낮지만 파주시(0.618) 등 유사 지자체와 비교하면 양호한 편이다. 결국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난 예산을 본예산 수립 단계에서 고의적으로 제외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출처: 나라살림연구소 정보공개청구 전수조사 데이터 재구성 *주: 자치구(인천 중구)의 재정 지표는 재정자립도 기준, 유사단체 평균 재정 지표와 대체로 비등함. 

광역 자치단체의 부실 편성은 더욱 심각하다. 광주, 강원, 충남, 전북 본청 4곳의 평균 확보율은 49.9%에 불과하다. 특히 전라북도의 경우 법정 최저적립액의 16.9%만을 본예산에 반영해 전국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통령령에 따라 매년 최저적립액의 21%를 재난 예방과 응급 복구에 실질적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북 본청은 최소한의 법정 의무 지출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기금을 적립한 셈이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4년 연속, 강원도와 인천 중구, 경기 안산시는 3년 연속으로 본예산에서 과소 편성을 되풀이하고 있어 기금 미달 적립이 고착화된 관행임이 확인됐다. 

편성 방식의 위법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경기도 본청과 충남 당진시의 경우 2026년도에 써야 할 재난관리기금을 이전 연도인 2025년도 하반기 추경 예산에 미리 편성해 확보하는 변칙을 썼다. 이는 그해에 벌어들인 세입으로 당해 연도 세출을 충당해야 한다는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로, 행정 편의를 위해 예산 강제 원칙을 저버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의무 비율 채우려 '공무원 패딩' 구매…현실성 없는 적립 기준 손질해야
이처럼 지자체들이 기금 적립을 기피하고 페널티를 감수하며 추경으로 예산을 미루는 배경에는 현행 제도의 경직성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1회 추경 이후에도 최저적립액을 채우지 못한 지자체에 재난관리체계 평가 감점이나 특별재난지역 선포 시 재난특별교부세 감액 등의 패널티를 부과한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본예산에서 예산을 누락시킨 뒤 행안부 평가 직전에 추경을 통해 억지로 기준을 맞추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도리어 기금이 이미 충분히 누적돼 추가 적립의 실효성이 낮은 지자체까지 과거 3개년 보통세 평균연액을 기준으로 획일적인 적립을 강제하다 보니 황당한 예산 낭비 사례도 발생한다.

실제로 부산 강서구청의 경우 재난관리기금의 법정 의무 사용 비율(21%)을 채우지 못해 평가 불이익을 받을 상황에 처하자 기금 예산 5000만원 이상을 전용, 공무원용 패딩 조끼를 무더기로 구입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경남 산청군의 경우 최저적립액의 97%인 31억1700만원만을 본예산에 편성했는데, 이미 기금 누적액이 충분해 추경을 통한 추가 적립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산청군이나 법정 기준의 97% 이상을 확보한 영암·고흥·부안군처럼 사실상 의무를 다한 지자체까지 획일적인 잣대로 페널티를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행 재난관리기금 제도를 '재해구호기금'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유연하게 개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재해구호기금법의 경우 누적 집행 잔액이 최근 3개년 보통세 평균연액의 일정 비율을 초과할 경우 해당 연도의 최저적립액 이하로 적립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또한 지자체의 자립도와 재정력지수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보통세의 100분의 1을 누적하게 만든 산출 방식을 고쳐 재정 여건에 따른 차등 적립 방식을 도입해야 기금의 고의적 편성 누락과 편법 지출을 동시에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결신문 / 김민준 기자 livek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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