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위상 넘보는 반도체···기술 패권 경쟁이 부른 'Capex 빅뱅'
신하연 기자
beliga23@naver.com | 2026-07-12 23:12:38
혁신 항목 간 시차 축소되며 하이퍼스케일러 Capex 및 데이터센터 건설 동시 진행
반도체 수출 호조 기반 한국 명목 성장률 9.3% 달성···2000년대 초중반 상회
[예결신문=신하연 기자] 글로벌 경제 체제가 과거의 통화정책 의존형 구조에서 벗어나 기업 투자와 정부 정책이 핵심이 되는 'Capex(자본적 지출) 빅뱅' 국면으로 진입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 국방 등 다방면에서 투자가 동시에 급증하는 구조적 변화가 확인된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과거 산업화 시대를 지배했던 원유의 위상을 AI 시대의 반도체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글로벌 GDP 대비 원유 소비 비중은 2.4% 수준을 기록 중인 반면, 반도체 매출 비중은 올해 1.2%에서 내년 1.5%까지 확대되며 원유 소비를 맹렬히 뒤쫓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 순환에 따른 변동성이 높은 두 산업의 특성상 정부 투자 확대와 결합된 반도체 산업의 진폭은 향후 한층 더 크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반도체 등장 직후인 1950~1960년대 미국 반도체 물량의 30% 이상을 정부가 구매했을 당시 매출이 단 한 해도 감소하지 않고 성장했던 사례처럼 국가 간 패권 경쟁이 유발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은 반도체 산업 고유의 Cyclical(경기민감) 속성을 완화하는 강력한 지지대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국가간 패권 경쟁이 최우선 과제가 되면 평소에 중요시되던 재정 건전성 등의 변수는 후순위로 밀린다는 점으로 고려하면 최근 글로벌 AI와 에너지, 국방 투자는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16.5%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2020년대 투자 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혁신 산업 간의 전파 시차가 극도로 짧아졌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인터넷 도입 이후 온라인 소매 판매 등 전자상거래 관련 투자가 본격화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차가 존재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AI 보급과 하이퍼스케일러 Capex 확대, 데이터센터 건설이 거의 같은 시점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러한 속도는 1870년대 철도 건설이나 1950년대 고속도로 건설 등 자본주의 역사상 기록적인 프로젝트들과 비교해도 확연히 빠른 페이스다. 현재 미국 기업의 AI 업무 활용 비율은 21% 수준이지만 과거 인터넷 보급 사례를 감안할 때 향후 60% 선까지 상승하며 관련 자본재 주문 확대를 지속해서 견인할 구조적 여력이 충분하다.
이 같은 자본재 중심의 혁신 사이클은 제조업 및 인프라 경쟁력을 보유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차별적인 수혜를 안겨주고 있다. 반도체 수출 확대로 한국의 글로벌 수출 및 시가총액 대비 비중이 일제히 상승했으며 단순 IT 서비스 중심의 인도나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브라질, AI 투자가 더딘 유럽 대비 상대적 우위를 확보했다.
실제로 2023년 이후 한국의 평균 명목 GDP 성장률은 9.3%를 기록하며 2011~2019년 평균(4.3%)은 물론 과거 주도국 구도였던 2003~2007년 평균 수준(7.1%)을 크게 웃도는 급등세를 나타냈다.
동아시아 공급망의 또 다른 축인 일본 역시 반도체 수출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의 6월 수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70.9% 급증하고 일본의 5월 공작기계 수주가 37.5% 증가하는 등 실물지표의 견조함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폭증에 따른 법인세 증수 효과와 향후 지급될 성과급의 낙수효과를 감안하면 이러한 명목 성장률 우위 기조는 단기 통화정책 변수를 넘어 중장기 안정적 성장 국면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성장률 급증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에서의 원화 강세 징후는 과거에 비해 제한적이다. 2000년대 중국 주도의 성장기에는 중국이 벌어들인 달러가 아시아 공급망 내부로 환류되거나 미국 국채 매입에 쓰이며 아시아 통화 강세를 유발했으나 현재 AI 주도 국면에서는 벌어들인 달러의 상당 부분이 미국 현지 공장 설립(해외직접투자)과 외국인 배당 지급, 선진국 부품·장비 수입 등으로 즉각 해외 환류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 경제 문법이었던 환율과 성장률, 국채금리와 주가 간의 고정된 상관관계 공식도 전면적인 재조정 국면을 맞이하고 있으며,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대를 지속하더라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통화정책 의존기 대비 현저히 낮아진 상태다.
예결신문 / 신하연 기자 beliga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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