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신문=백도현 기자] 최근 종묘 앞 세운지구 재개발 문제로 시끄럽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념이 충돌하는 양상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확실한 답안을 갖고 있다는 점을 먼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조선의 한양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선조들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산마다 묘가 있고 곳곳에 사당이 있다. 그중에서도 종묘는 사당 중의 사당이다. 경복궁이 지어지기도 전, 태조 이성계가 먼저 세운 곳이 종묘다. 이 공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조선 500년의 혼이 담긴 성소(聖所)다.
종묘 정전(正殿) 앞에 서 본 적이 있는가. 그곳은 한마디로 '위대한 고요'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은 종묘를 이렇게 평가했다.
"세계 최고의 건물 중 하나다. 이처럼 장엄하고 고요한 공간은 세상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종묘의 정전이 보여주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아름다움은 미니멀리즘과는 다르며, 평등과 무한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모습이 마치 우주와 같다." -프랭크 게리 (Frank Gehry,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설계자)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에는 종묘가 있다."-시라이 세이이치(Seiichi Shirai, 일본 건축가)
그러나 종묘는 파르테논 신전이나 중국 자금성의 태묘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곳에 서면 누구나 겸허해진다. 화려하지 않으나 장엄하고, 비어 있으나 꽉 찬 듯한 그 아름다운 긴장감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든 우리만의 미학이다.
그런데 지금 서울시가 이 종묘 앞을 막아서는 고층 빌딩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겉으로는 2000억원대의 개발이익을 내세우지만, 앞으로 수백년 -혹은 그 이상- 이 문화재가 가져다 줄 이익과 자긍심은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세운 4구역 토지주들의 이익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2018년, 이미 서울시와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세운상가 일대 개발 계획을 확정하며 문화재 보호를 위한 합리적인 높이 제한을 뒀다. 종묘와 가까운 곳은 55m, 먼 쪽은 71m 수준이었다. 기존 약속대로만 해도 충분히 개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 오세훈 시장은 이 약속을 뒤집고 건물을 무려 140m 이상, 거의 30층 높이로 올리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건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눈부신 경관을 자랑하는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교통난 해소를 이유로 2km 밖에 현대식 다리를 건설했다는 이유로, 해상왕국의 상징이었던 영국의 리버풀은 축구장을 짓고 고층 건물을 올렸단 이유로 문화유산에서 취소됐다. 단순히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더욱이 그 유네스코가 이미 한국에 경고장을 날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경관을 가리냐 아니냐'의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핵심은 '감히 누가 종묘를 내려다보느냐'다.
역사적으로 보면 악덕 친일파 윤덕영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옥인동 언덕 위에 '벽수산장'을 짓고 높은 곳에서 경복궁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서울시의 계획이 그 매국노의 짓과 무엇이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조선 국왕들의 신위가 모셔진 신성한 공간을 상업 논리에 찌든 현대식 빌딩들이 위에서 내려다보게 만드는 것, 이것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다른 나라들은 상징적인 문화유산 앞에 고층 빌딩을 세워 위에서 내려다보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중국의 태묘, 일본의 에도성 주변을 보라. 그들은 1km 거리를 두고 개발을 제한한다. 그게 문화유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150m 떨어진 곳에 마천루를 세워 종묘의 숨통을 조이려 한다.
임기 4년짜리 선출직 시장의 잘못된 판단이 수백 년 이어온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훗날 종묘를 찾는 후손들과 외국인들이 고층 빌딩 숲에 포위되어 위압 당하는 종묘를 보며 무엇을 느낄 것인가.
더 나아가 종묘 앞 높이 제한이 무너지면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의 모든 문화재 위로 욕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경복궁 너머로 현대식 건물이 보이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은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공존에는 '선'이 있어야 한다. 신성한 공간을 발아래 두려는 오만한 시선은 공존이 아니라 침범이다.
올바른 역사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부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겸허함이라도 지켜주길 바란다. 종묘는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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