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지방재정 신속집행의 명암] ㊦ 실적 지상주의의 함정···현장 괴리 좁힐 대안은?
김민준 기자
livekmin@hanmail.net | 2026-04-26 18:31:04
중앙정부 이전재원 교부 일정과 집행 목표 간 '미스매치' 행정력 낭비 초래
일률적 수치 관리서 탈피···지역별·사업별 '탄력적 집행 목표제' 도입 시급
[예결신문=김민준 기자] 상반기 재정 신속집행이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파급력을 미친다는 실증적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행정 현장에서는 비명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일률적인 집행률 목표 설정이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실적 쌓기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신속집행 정책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속도'에만 매몰된 현행 체계를 '품질'과 '유연성' 중심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장이 마주한 '집행 불능'의 벽
행정 현장에서 신속집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법적·행정적 절차의 경직성이다. 대규모 시설 사업이나 기반 시설 확충 사업의 경우, 상반기 내에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토지 보상과 주민 협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보상 협의는 사유 재산권과 직결돼 있어 행정적 의지만으로 단축하기 어렵다. 협의가 결렬돼 수용 절차로 넘어갈 경우, 상반기 집행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계절적 요인 또한 치명적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동절기에는 부실 공사를 방지하기 위해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진다. 이 기간이 지난 후 해빙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실질적인 공사가 시작되는데, 3~4월에 설계를 마친 뒤 6월 말까지 대규모 기성금을 집행하기에는 공기(工期)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장 관계자들은 이러한 물리적 한계를 무시한 집행 압박이 오히려 부실 설계나 졸속 시공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재원은 늦는데 집행은 빨라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원 전달 체계의 엇박자도 신속집행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지자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고보조금과 교부세는 중앙정부의 예산 확정 및 배정 일정에 종속된다.
재원 교부 결정이 상반기 중반을 넘겨 확정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보니, 지자체 입장에서는 돈이 손에 들어오기도 전에 집행 계획부터 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특히 공모 사업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상반기에 공모가 진행되고 결과가 하반기에 발표되는 사업들이 다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전체 집행률 산정에는 이들 사업의 예산까지 포함돼 평균치를 갉아먹는다.
이는 지자체 간 불필요한 실적 경쟁을 유발하고, 행정력을 민생 현장이 아닌 수치 관리에 쏟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민간 부문의 수용성과 행정 비용의 증가
신속집행의 압박은 민간 업체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자체가 집행률을 높이기 위해 선금을 대거 지급하려 해도 중소 업체들은 선급금 보증서 발급 비용이나 보증 한도 문제로 이를 기피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또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설계 변경이나 계약 금액 조정 절차가 진행 중일 때는 집행이 일시 중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민간 시장의 변동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집행 수치만을 강조하는 방식은 행정과 민간의 피로도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속도 중심에서 품질 중심으로…패러다임 전환 절실
이에 대해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신속집행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률적 목표 관리'를 폐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업의 성격에 따라 '연중 균형 집행 사업'과 '상반기 집중 집행 사업'을 명확히 구분하고 지자체별 재정 자생력과 기상 조건 등을 반영한 차등적 목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고보조금의 조기 교부 체계를 확립하고 계약 법령상의 각종 절차를 신속집행 기간에 한해 대폭 간소화하는 법적 보완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집행률 수치로 지자체를 줄 세우는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집행의 내용이 지역 경제에 실제 어떤 효과를 나타냈는지 '질적 평가'를 도입하는 것이 제도 안착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연구원은 "신속집행은 지역 경제의 '적기 투약'과 같다. 그러나 약의 효능을 높이려면 환자의 상태와 투약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모든 지역에 같은 양의 약을 같은 시간에 주입하라는 식의 행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지방재정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책임 있는 집행이 가능하도록 제도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결신문 / 김민준 기자 livekmin@hanmail.net
[ⓒ 예결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
- 1[기획: 생산적 금융, K-산업 다시 뛰게 하다] ④ 석유화학, 공급 쇼크 vs 구조적 과잉···정책 재편 시급
- 2[기획: 생산적 금융, K-산업 다시 뛰게 하다] ⑤完 철강·비철금속, 탈탄소와 고부가 소재로 공급망 안보 수호
- 3[의정부시 2026 예산분석] ㊦ 복지 55%에 재정 여력 잠식···SOC 예산 부실
- 4'투서기기(投鼠忌器)' 딜레마···쿠팡의 전방위적 美 로비에 우리 사법·안보 주권 위기
- 5[심층분석: 지방재정 신속집행의 명암] ㊤ '타이밍'이 만든 경제 효과···GRDP 성장 견인차
- 6[심층분석-지방재정 신속집행의 명암] ㊦ 실적 지상주의의 함정···현장 괴리 좁힐 대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