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폭풍전야⸱⸱⸱K-배터리, IRA 폐기 공포 엄습

백도현 기자 / 2024-11-13 23:13:18
'그린 뉴 스캠' 기조에 보조금·연비규제 전면 재검토 예고
상반기 AMPC 8400억 증발 시 적자 전환 불가피
대중국 견제 반사이익보다 '시장 위축' 공포 더 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국내 이차전지 산업계에 드리운 암운이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전면 부정하며 화석연료 부흥과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보조금도, 규제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국내 이차전지 산업계에 드리운 암운이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전면 부정하며 화석연료 부흥과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 노선의 변경을 넘어 미국 시장에 사활을 걸어온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생존 방정식을 송두리째 흔드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13일 금융투자업계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은 국내 이차전지 업계가 겪고 있는 '캐즘'을 구조적 장기 침체로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핵심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폐기 혹은 축소다.

■ 바이든의 유산 'IRA' 지우기⸱⸱⸱"녹색 사기는 끝났다"

바이든 행정부는 파리기후협약 복귀와 IRA 시행을 통해 미국 내 전기차 및 배터리 공급망을 재편했다. 특히 북미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과 모듈에 대해 킬로와트시(kWh)당 일정액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게 만든 결정적 유인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이러한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녹색 사기(Green New Scam)'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왔다. 그는 취임 즉시 행정명령을 통해 파리기후협약을 다시 탈퇴하고 IRA에 근거한 세액공제 혜택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에 공화당의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 역시 지난해 9월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고 내연기관 차량에 혜택을 주는 '드라이브 아메리칸 액트(Drive American Act)'를 발의한 바 있어 행정부와 입법부가 동시에 '전기차 힘 빼기'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 AMPC 없으면 '적자'⸱⸱⸱수익성 직격탄

문제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실적이 AMPC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배터리 3사가 인식한 AMPC 혜택 규모는 약 841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35억원이나 증가했다.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로 가동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AMPC는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의 경우 보조금을 제외하면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펀더멘털이 약화된 상태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AMPC 예산 집행을 동결하거나 폐지할 경우, 국내 기업들은 즉각적인 적자 전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법안 자체를 폐지하려면 상·하원 의결이 필요해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보조금 지급 요건을 까다롭게 하거나 예산 집행을 미루는 방식의 '사실상 폐기'는 언제든 가능하다"며 "이는 수조 원대 투자를 진행 중인 한국 기업들에 치명적인 재무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규제 완화가 부른 '전동화의 역주행'

트럼프 2기 정책의 또 다른 핵심은 '차량 연비 규제 완화'다. 바이든 정부가 강력한 배기가스 배출 규제를 통해 완성차 업체들을 강제로 전기차 전환으로 내몰았다면,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족쇄를 풀어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완성차 업체(OEM)들의 전동화 속도 조절에 명분을 제공한다. 이미 포드, GM 등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HEV)나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규제라는 강제성이 사라지면 전기차 신차 출시는 더욱 지연되고 자연스럽게 배터리 수요는 급감하게 된다.

수요 위축은 곧 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배터리 공장 가동률 저하는 물론, 예정됐던 신규 공장 증설 계획이 전면 보류되거나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소재-부품-장비로 이어지는 K-배터리 밸류체인 전체의 침체를 의미한다.

■ '반중(反中)' 기조의 역설⸱⸱⸱파이 자체가 줄어든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강력한 대중국 견제 정책이 한국 기업에 반사이익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제품에 대해 6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최혜국 대우를 박탈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미국 시장 내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의 진입 장벽은 바이든 정부 때보다 훨씬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장 위축'의 공포가 '경쟁 완화'의 이익보다 클 것으로 진단한다. 아무리 경쟁자가 줄어들어도 시장(파이) 자체가 쪼그라들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 진입이 막힐 경우, 유럽이나 동남아 등 제3국 시장에서 저가 물량 공세를 퍼부으며 한국 기업들과 출혈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내수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배터리 가격을 원가 수준으로 낮출 경우, 글로벌 배터리 판가 하락을 주도해 국내 기업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트럼프 2기의 에너지 정책은 단순히 보조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방향을 뒤바꾸는 거대한 파도"라며 "국내 기업들은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시장 다변화 전략과 함께, 보조금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압도적인 기술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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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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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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