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강남구① 역대급 '세수 펑크'에도 금고엔 '2437억' 현금⸱⸱⸱'24년 서울 25개 구 결산 전수조사

백도현 기자 / 2025-12-01 17:25:52
강남·영등포·서초 3곳 잉여금만 6300억 육박⸱⸱⸱관행적 '과소 추계'가 낳은 재정 왜곡
주민 혜택으로 돌아갔어야 할 혈세, 구청 금고에서 낮잠
'2024회계연도 서울시 25개 자치구 결산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를 필두로 한 이른바 ‘부자 구청’들은 불황의 무풍지대였다. 그들의 막대한 현금성 잉여금이 적립 있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2024년은 대한민국 지방재정 역사상 '보릿고개'로 기록될 해였다. 정부의 역대급 세수 결손 사태로 교부세가 줄어들자 전국의 지자체장들은 "돈이 말랐다"며 비명을 질렀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엎던 관행을 멈췄고 주민 복지 예산은 '검토 중'이라며 멈췄다.

1일 본지가 분석한 '2024회계연도 서울시 25개 자치구 결산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를 필두로 한 이른바 ‘부자 구청’들은 불황의 무풍지대였다. 그들의 금고에는 막대한 현금성 잉여금이 적립돼 있었다. 모두가 가난해진 게 아닌, 오히려 누군가의 금고는 비대해진 모습이다. 

■ 강남구의 미스터리⸱⸱⸱2437억은 어디서 왔나
강남구의 2024회계연도 결산상 잉여금은 2437억원, 순세계잉여금은 234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압도적인 1위다.

이 숫자가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강남구가 남긴 2437억원은 성동구(858억원), 종로구(885억원), 중구(920억원) 등 3개 자치구의 잉여금을 모두 합친 금액과 맞먹는다. 심지어 강북 지역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구가 1년 내내 주민들에게 지방세(재산세 등)를 걷어들인 총액보다도 많다. 가난한 구청이 1년 동안 땀 흘려 번 돈보다 강남구가 '쓰다 남아서' 금고에 넣은 돈이 더 많은 셈이다.

문제는 2024년의 특수성이다. 세수 부족으로 중앙정부와 서울시 본청이 긴축 재정을 선언했던 시기다. 강남구 역시 예산 편성 당시에는 "재정 여건이 불확실하다"며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결과는 약 2400억원의 흑자였다. 이는 강남구가 관행적으로 세입을 적게 잡고(과소 추계), 세출은 부풀려 잡는 식의 ‘재정 알박기’를 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한다. 예측 실패라기보다는 '엄살'에 가깝다.

■ 영등포·서초·용산⸱⸱⸱'현금 부자'들의 카르텔
강남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분석에서 흥미로운 점은 영등포구의 약진이다. 영등포구는 1998억원의 잉여금을 기록하며 서초구(1891억 원)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여의도 금융가를 낀 영등포구와 법조타운·고급 주거지가 밀집한 서초구, 그리고 대통령실 이전 효과와 개발 호재가 겹친 용산구까지 합세했다. 용산구는 예산 규모 대비 잉여금 비율이 16.7%로 서울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예산 100만원을 받으면 그중 17만원은 쓰지 않고 남겼다는 뜻이다.

이들 '부자 벨트'의 공통점은 탄탄한 자체 수입원(법인지방소득세⸱재산세)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교부세가 줄어도 타격이 미미하다. 하지만 이들은 예산 편성 시기에는 다른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어렵다"는 기조를 유지한다.

그 결과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필수적인 서비스나 인프라 투자는 뒤로 밀리고, 연말 결산 시점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순세계잉여금'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 이는 명백한 행정 편의주의이자, 주민에 대한 배임이다.

■ 잉여금은 '절약'이 아닌 '무능'의 증거
일각에서는 "돈을 아껴 썼으니 칭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는 지방재정의 본질을 모르는 소리다. 기업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미덕이지만, 지자체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순세계잉여금이 과도하게 발생했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한다. 첫째, 애초에 세금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걷었거나(과다 징수) 둘째, 계획했던 사업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사업 지연 및 포기)는 것이다.

강남구가 남긴 2437억원이면 노후 경로당 수십 곳을 최고급으로 리모델링하고 관내 모든 어린이보호구역에 스마트 횡단보도를 깔고도 남는다. 혹은 침수 피해 예방을 위한 대형 빗물 터널 공사의 종잣돈으로 쓸 수도 있다.

이 돈이 은행 금고에서 연 3~4%의 이자 수익을 올리는 동안 주민들이 누려야 할 행정 서비스의 기회비용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공공기관이 본분을 망각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자료=지방재정365

■ '기울어진 운동장'⸱⸱⸱시가 개입해야
이번 2024년 결산 데이터는 서울시 자치구 간의 '재정 양극화'가 위험 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준다.

강남·서초·영등포 등 상위 3개 구의 잉여금 합계는 약 6326억원에 달한다. 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노원구, 강북구, 도봉구 등은 세수 펑크의 직격탄을 맞아 가용 재원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들은 보조금 매칭비(구비 분담금)를 낼 돈이 없어 국비 지원 사업조차 포기해야 할 처지다.

어느 구에 사느냐에 따라 행정 서비스의 질이 극명하게 갈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강남구 주민은 보도블록이 멀쩡해도 교체되는 풍경을 보고, 강북구 주민은 파손된 도로 보수가 지연되는 불편을 겪는다.

한 지방 재정 전문가는 "이제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 조정교부금 제도를 손질해 잉여금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자치구에 대한 교부율을 조정하고, 그 재원을 재정 약체 자치구의 인프라 개선에 투입하는 '재정 평탄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며 "또한 행정안전부는 순세계잉여금 발생 비율이 일정 수준(예: 5%)을 넘는 지자체에 대해 차기 년도 예산 편성 시 페널티를 부과하거나, 지방교부세를 감액하는 식의 강력한 제재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강남구는 예산 규모와 재산세 비중이 높고 계속 사업이나 큰 사업 등으로 인해 이월되는 금액이 많다"며 "올해부터는 순세계잉여금이 남으면 통합재정안정화기금으로 예탁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불용액이 남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예결신문은 이번 전수조사를 시작으로, 각 자치구의 '불용액(쓰지 않은 돈)' 세부 내역 검증에 들어갈 방침이다. 공익 차원에서 단순히 돈이 남았다는 사실을 넘어 왜 남았는지,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취소된 주민 숙원 사업은 무엇인지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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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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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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