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세수 한파'에도 성남시 잉여금 수년째 1조원대⸱⸱⸱'부자 도시'의 딜레마

백도현 기자 / 2025-12-03 19:44:59
2024회계연도 경기도 31개 시·군 결산 자료 전수 분석⸱⸱⸱성남시 결산상 잉여금 1조1605억, 전국 최대
파주시, 세입 대비 잉여금 비율 26.4% 최대···규제·보상 지연에 8천억 묶여
"과도한 잉여금은 행정 서비스 기회비용 상실⸱⸱⸱적극적 재정 운용 시급"
'2024회계연도 지역통합재정규모 결산 자료'를 전수 분석한 결과, 성남시 재정 상황은 최근 수년간 1조원 이상의 잉여금을 기록하며 타 지자체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2024년은 대한민국 지방재정 역사에서 '보릿고개'로 기록될 해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 여기에 정부의 국세 수입 감소에 따른 지방교부세 축소까지 겹치면서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는 마른 수건을 짜내듯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일부 지자체는 필수적인 경상 경비마저 줄이고, 진행 중이던 사업을 일시 중단하는 등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재정 위기 속에서도 경기도 성남시의 곳간만은 특히 풍요로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단순히 여유가 있는 수준을 넘어 천문학적인 규모의 현금이 금고에 쌓여 있는 현상이 2024년 결산에서도 재확인된 것이다.

3일 본지가 '2024회계연도 지역통합재정규모 결산 자료'를 전수 분석한 결과, 성남시 재정 상황은 최근 수년간 1조원 이상의 잉여금을 기록하며 타 지자체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막대한 잉여금이 과연 '재정 건전성'의 상징인지, 아니면 '행정 비효율'의 단면인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성남시 2024년 잉여금 1조1605억⸱⸱⸱'규모의 경제' 혹은 '집행의 한계'
2024회계연도 기준 성남시의 결산상 잉여금은 1조1605억원으로 집계(2023년 1조2319억원, 2022년 1조1411억원, 2021년 1조1336억원)됐다. 이는 경기도 내 31개 시·군 중 압도적인 1위다. 2위인 화성시(8977억원)와 비교해도 2600억원 이상 많은 수치이며 인구 100만 특례시인 수원시(5428억원)나 고양시(6245억원)의 잉여금 규모를 두 배 가까이 상회한다.

이 1조1605억원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규모인지 살펴보자. 경기도 내 또 다른 지자체인 과천시의 1년 전체 세입(1조124억원)보다 많고 심지어 동두천시(9163억원)나 가평군(8750억원)의 1년 살림살이를 통째로 꾸리고도 수천억이 남는 돈이다. 성남시장은 1년 예산을 다 쓰고 남은 '자투리 돈'만으로도 이들 도시 하나를 1년 동안 운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남시는 매년 "판교 특별회계 등 목적이 정해진 돈이라 함부로 못 쓴다"고 해명하지만, 1조원이 넘는 돈이 매년 결산 때마다 통장에 찍혀 있다는 것은 예산 편성과 집행 시스템에 심각한 동맥경화가 왔다는 증거다. 주민들이 낸 세금 5조9000억원 중 약 20%가 쓰이지 않고 멈춰버린 셈이다. '건전 재정'이 아니라 '무능 재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통상적으로 결산상 잉여금은 세입 추계보다 더 걷힌 세금(초과 세입)과 예산을 편성했으나 쓰지 않고 남은 돈(집행 잔액)의 합으로 구성된다. 성남시의 경우 판교 테크노밸리와 분당신도시 등에서 발생하는 법인지방소득세와 재산세 등 자체 수입원이 타 지자체에 비해 월등히 탄탄한 것이 1조원대 잉여금의 1차적 원인이다.

그러나 단순히 '돈이 많이 들어와서' 많이 남았다고 보기에는 그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하다. 성남시의 2024년 세입 결산액은 5조9039억원, 세출 결산액은 4조7433억원이었다. 즉, 들어온 돈의 약 20%가량이 지출되지 않고 남았다는 뜻이다. 이는 성남시가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을 적기에 시민들을 위해 투입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심층 취재 결과 성남시 잉여금 적체 현상은 구조적인 '동맥경화'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가장 큰 원인은 대형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의 지연이다. 시는 '판교 트램(성남도시철도 2호선)' 건설 등을 위해 판교 특별회계 등에 막대한 예산을 편성했으나, 예비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등 행정 절차가 수년째 답보 상태에 머무르면서 해당 예산이 집행되지 못하고 매년 이월되거나 잉여금으로 누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을 위해 돈은 묶어뒀으나, 첫 삽을 뜨지 못해 장부상 잔액만 늘어나는 '불용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의 보수적인 기금 운용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시는 일반회계에서 발생한 잉여금을 적극적인 세출 사업으로 전환하기보다 '통합재정안정화기금' 등에 적립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미래의 재정 위기에 대비한다는 명분은 타당하지만, 고물가와 고금리로 서민 경제가 신음하는 현시점에서는 지나친 '곳간 잠그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주민의 복리 증진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순환돼야 할 혈세가 기금이라는 저수지에 고여 흐르지 않는 모습이다.

■ 파주시의 미스테리⸱⸱⸱돈은 있는데 쓸 수가 없다
이번 결산 분석에서 성남시와 더불어 특이점이 발견된 곳은 파주시다. 파주시의 2024년 결산상 잉여금은 7996억원으로, 도내에서 네 번째로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액수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비율'이다. 

파주시의 세입 결산액은 3조295억원으로, 세입 대비 잉여금 비율이 무려 26.4%에 달한다. 이는 성남시(19.6%)나 화성시(18.6%)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로, 파주시 재정 운영의 비효율성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파주시의 높은 잉여금 비율은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과 맞물려 있다. 파주시는 GTX-A 노선 개통, 운정신도시 개발 등 대형 개발 호재로 인해 재정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맞춰 도로 개설, 공원 조성 등 다양한 인프라 예산을 편성하고 있지만, 실제 집행 단계에서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바로 '규제'와 '보상'의 늪이다. 파주엔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넓게 분포해, 도로 하나를 개설하려 해도 군부대와의 협의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예산을 확보해 놓아도 군 협의가 지연되면 착공조차 할 수 없어 해당 예산은 고스란히 이월되거나 불용 처리된다.

또한, 급격한 지가 상승으로 인해 토지 보상 협의가 난항을 겪는 경우도 빈번하다. 결국 파주시의 8000억원에 달하는 잉여금은 행정 관청이 돈을 아껴서 남긴 것이 아니라 규제와 절차에 가로막혀 주민을 위해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 '강제 저축'에 가깝다.

자료=지방재정365

■ '동두천 vs 성남', 12배 벌어진 재정 양극화
경기도의 '남북 격차'는 재정 데이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경기 북부의 대표적 낙후 지역인 동두천시의 잉여금은 962억원에 불과했다. 성남시와 비교하면 격차가 무려 12배다.

동두천시가 12년 동안 모아야 할 잉여금을 성남시는 단 1년 만에 남긴다. 동두천시나 연천군(1873억원) 같은 경기 북부 지자체들은 세입 자체가 적어 '아껴 쓰고 싶어도 아낄 돈이 없는' 구조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남부의 부자 도시들은 잉여금으로 이자 놀이를 하며 재산을 불리고 있다. 경기도 내에서 '재정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 잉여금은 '자랑' 아닌 '숙제'⸱⸱⸱재정 패러다임 전환해야
지방재정법상 잉여금 발생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세입 증가나 불가피한 사유로 인한 집행 잔액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성남시의 1조1600억원이나 파주시의 26%대 잉여금 비율은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선 수치다. 이는 예산의 '편성-집행-결산'으로 이어지는 재정 사이클이 어딘가에서 고장 났음을 의미한다.

공공 부문의 재정은 기업처럼 이익을 남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듬해 가용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공공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 존재 이유다.

전문가들은 2025년 예산 편성 및 심의 과정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한 지방 재정 전문가는 "관행적으로 전년도 예산을 답습하거나, 집행 가능성을 면밀히 따지지 않고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는 '묻지마 편성' 관행을 끊어야 한다"며 "특히 성남시처럼 기금 적립 규모가 비대한 지자체의 경우, 의회가 기금 운용 계획을 보다 엄격하게 심사하여 불필요한 적립을 막고 일반회계로의 전출을 유도해 민생 사업에 투입하도록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파주시 사례에 대해서는 "적극 행정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며 "군 협의나 보상 지연 등 고질적인 집행 부진 사유를 해소하기 위해 전담 TF팀을 구성하거나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집행 시기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연동형 예산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과다 잉여금 발생 원인에 대한 시의회 차원의 면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관행적인 예산 편성을 지양하고, 사업별 집행 가능성을 정밀하게 진단해 불용액과 이월액을 최소화하는 등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고강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출처
• 2024회계연도 각 지자체 결산서
• 지방재정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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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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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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