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제 개편과 한미 관세 상호 적용 우려가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종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가운데 HBM(고대역폭메모리) 관련 생태계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정책 리스크’와 ‘AI 수혜’라는 변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실적과 수주로 성장을 입증한 소수 종목이 시장의 주도주로 부상하고 있다.
■ 단기 투자심리 악화시킨 ‘관세’와 ‘세금’
지난 주(7월 29일~8월 2일) 국내 소부장 업종은 뚜렷한 조정 국면을 나타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 배경으로 정부의 세제 개편안과 한미 간 반도체 상호 관세 부과 가능성을 꼽는다. 정부가 내놓은 세법 개정안은 소재·장비 업체에 대한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축소와 일부 부품사에는 기업형 대주주 과세 강화 우려까지 더해지며 투자심리를 냉각시켰다.
여기에 미국 IRA 및 칩스법에 근거한 자국 산업 보호 기조 강화, 여기에 한국산 반도체에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 나오자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소부장 업체들에 단기적 수급 이탈이 나타났다.
실제로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 넥스트칩은 유상증자 미달이라는 이슈와 맞물려 20% 이상 하락했고 후공정 테스트 기업 두산테스나는 주간 기준 -12% 약세를 기록했다. 반면 삼성 파운드리 수주 소식이 전해진 덕산하이메탈, 인적분할 철회라는 특수 이슈가 발생한 하나마이크론은 상승 마감하며 선택적 반등 흐름을 보였다.
■ HBM 중심의 첨단 패키징 체인 '주목'
시장 전반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HBM 관련 생태계는 예외였다. 한미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최근 기업 간담회에서 회사는 HBM4용 TC 본더 장비의 독점 공급 가능성을 언급하며 하반기 양산 납품 계획을 밝혔다. 이는 단순 기대감이 아닌 실질적인 수주와 설비 투자로 연결되는 구조적 성장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HBM 테스트 및 소터 장비 체인도 동반 주목받고 있다.
제너셈은 HBM 최종 테스트용 소터 장비의 고객 평가를 완료하고 양산 장비 설치 단계에 돌입했다. 주변 기기 장비는 제너셈이, 테스트 장비는 테크윙이 공급하는 구조로 파악된다. HBM의 특성상 수율 안정과 온도 관리, 리워크 최소화가 핵심인 만큼, 관련 테스트 장비에 대한 수요는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 글로벌 흐름도 'AI 수요'가 이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흐름 또한 HBM 및 AI 서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STMicroelectronics는 NXP의 MEMS 센서 사업부(연 매출 3억 달러)를 인수하며 센서 분야 확장에 나섰고, Lam Research는 FY26까지의 가이던스를 상향 조정하며 AI 반도체 생산 확대에 따른 장비 수요 증가를 자신했다.
Tokyo Electron은 중국 경기 둔화로 이익 전망을 낮췄지만 HBM·AI 서버 투자 지속을 전제로 한 중장기 낙관론은 유지했다.
이러한 기조는 한국의 수출 데이터에서도 감지된다. 7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6.3% 증가한 147.1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으며 이 중 메모리 수출이 전월 대비 39.3% 증가한 94.7억 달러를 차지했다. 이는 단가 상승과 고부가 제품(HBM 등)의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
업계 한 전문가는 “현재 반도체 소부장 섹터는 전통적인 사이클 논리가 아니라 정책/지정학에 구조적 수요라는 이중 축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정책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나 실제 AI 서버용 반도체·HBM 전후공정에서 수주나 실적이 확인된 종목은 중장기적으로 아웃퍼폼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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