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에 발등 불 떨어진 삼성⸱⸱⸱62조 투자하고도 '보조금 빈손' 위기

백도현 기자 / 2024-11-08 15:02:31
트럼프 "칩스법은 나쁜 거래⸱⸱⸱관세가 정답" 폐기 시사
TSMC는 '막차' 탑승 유력⸱⸱⸱삼성은 협상 난항
테일러 공장 '공사비 급등·가동 연기' 겹쳐 진퇴양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이 확정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인 '반도체과학법(CHIPS Act, 이하 칩스법)'이 존폐 기로에 섰다. "반도체 보조금은 매우 나쁜 거래"라며 폐기 또는 축소를 공언해 온 트럼프 당선인의 기조 탓에 미국에 사활을 건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최대의 대외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이 확정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인 '반도체과학법(CHIPS Act, 이하 칩스법)'이 존폐 기로에 섰다. "반도체 보조금은 매우 나쁜 거래"라며 폐기 또는 축소를 공언해 온 트럼프 당선인의 기조 탓에 미국에 사활을 건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최대의 대외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당장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남은 두 달여의 시간이 삼성전자에는 약속된 보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보조금 대신 관세 매기겠다"⸱⸱⸱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공포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바이든 정부의 칩스법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에 생산 보조금(390억 달러)과 연구개발(R&D) 지원금(132억 달러) 등 총 527억 달러(약 73조원)를 지원하고 설비 투자비의 25%를 세액 공제해 주는 법안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해외 기업에 현금을 쥐여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알아서 미국에 공장을 짓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즉, '당근(보조금)'을 없애고 '채찍(관세)'만 남기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삼성전자는 보조금 혜택은커녕,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에 대해서도 고율 관세를 물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 중국 포기하고 선택한 미국인데⸱⸱⸱삼성의 승부수 '흔들'

삼성전자 입장에서 칩스법은 단순한 자금 지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칩스법에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향후 10년간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우려 대상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드레일' 조항이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를 담당하는 중국 시안 공장의 고도화를 사실상 포기하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투자를 택했다.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450억 달러(약 62조원)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미 정부가 약속한 64억 달러(약 9조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이 핵심적인 수익성 담보 장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경쟁사는 '졸업' 앞둬⸱⸱⸱삼성만 협상 '지지부진'

문제는 경쟁사들이 바이든 임기 내 보조금 수령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은 반면, 삼성전자의 협상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대만의 TSMC와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는 최근 미 상무부와 보조금 및 대출 지원에 관한 최종 계약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미국 기업인 인텔과 마이크론 역시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보조금 지급 예비비망록(PMT)을 체결한 이후 아직 구체적인 최종 계약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협정의 복잡성과 세부 조건 조율 문제로 바이든 임기 내에 모든 조건을 확정 짓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공사비 눈덩이·가동 연기⸱⸱⸱보조금 없으면 '밑 빠진 독'

삼성전자의 내부 사정도 녹록지 않다. 야심 차게 착공한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은 미국의 고물가와 인건비 상승 여파로 건설 비용이 당초 예상(170억 달러)보다 수십억 달러 이상 급증했다. 여기에 수율 확보 문제와 현지 인력난 등이 겹치며 공장 가동 시점은 당초 2024년 말에서 2026년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약속된 9조원의 보조금마저 삭감되거나 지급이 무기한 연기될 경우, 삼성전자의 미국 사업은 수익성을 장담할 수 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 "인텔 살리기에 밀릴 수도"⸱⸱⸱정부 차원 외교력 절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반도체 챔피언인 '인텔 살리기'에 집중하면서 삼성전자와 같은 해외 기업에 대한 지원을 후순위로 미루거나 조건을 까다롭게 변경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롭 앳킨슨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회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을 조기에 집행하지 않고 차기 정부에 선택권을 넘긴 것은 치명적 실수"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개별 기업의 협상력만으로는 돌파하기 힘든 국가 대항전 양상"이라며 "남은 두 달 동안 한국 정부가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바이든 행정부가 삼성전자와의 계약을 확정 짓도록 설득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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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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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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