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부담률 낮을수록 과소비 심화···5세대 실손 전환 및 비급여 통제 절실
대법원 판례·분조례 기준 임의 변경하는 보험사 부당 심사 행태 엄단
[예결신문=김민준 기자] 국민 36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이 비급여 과잉 진료 탓에 심각한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4일 금융감독원 '2025년 실손의료보험 사업실적(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료 수익은 18조원으로 전년 대비 10.0% 증가했으나 백청 청구된 지급보험금은 11.4% 급증한 17조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손해조사비와 실제 사업비 등 약 2조9000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얹어지면서 실손보험 통합 적자 규모는 무려 1조8700억원으로 불어났다. 전년(1조6200억원)과 비교해 적자 폭이 15.6%나 확대되며 보험사 건전성은 물론 국민의 보험료 인상 압박을 자극하는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다.
실손보험의 손익분기점 손해율이 약 85% 수준인 반면, 지난해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경과손해율은 101.0%로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3세대(120.3%)와 4세대(115.1%)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극도로 악화되는 추세다. 이 같은 만성 적자의 근본 원인은 보장 범위가 넓고 자기부담률이 낮은 과거 상품 구조를 악용한 과잉 비급여 진료의 폭증에 있다.
금융감독원 보험상품분쟁2국 제도팀 관계자는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는 향후 보험료 추가 인상의 핵심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보험금 지급 거부 등 소비자 분쟁을 양극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보험사들이 과잉 의료 이용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보험금 심사 기준을 임의로 강화하면서 정당한 소비자들까지 피눈물을 흘리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과도한 비급여 진료를 차단할 5세대 실손보험의 조기 안착과 함께 보건당국과의 비급여 관리 공조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암·심혈관 치료비 뛰어넘은 도수치료…의원급 비급여가 64% 독식
지급보험금 내역을 분석해 보면 실손보험 재정 누수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해 지출된 총 17조원의 보험금 중 경제적 실질 세부담에 준하는 비급여 항목 지출이 9조7000억원으로 전체의 57.1%를 차지했다.
특히 대표적인 비중증 치료인 근골격계 질환(도수치료, 체외충격파 등) 관련 보험금은 2조7000억원으로, 국가 중증질환인 암, 뇌·심혈관질환 관련 보험금(2조6000억원)을 넘어서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형성했다. 영양제 처방 중심의 통원 비급여주사제 비용도 1조원을 돌파하며 가파른 전출 양상을 보였다.
의료기관별 편중 현상도 심각하다. 실손 비급여 보험금의 64%가 대형 종합병원이 아닌 일선 의원(37.1%)과 병원(26.9%)급에서 독식하고 있다. 특히 의원(66.2%)과 병원(70.6%), 요양병원(83.5%)은 전체 실손 청구액 중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일부 개원가를 중심으로 도수치료와 영양제 주사를 패키지로 묶어 실손보험 청구를 유도하는 마케팅이 성행하면서 기금의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에는 로봇수술(72.4%↑), 하이푸시술(46.0%↑) 등 고액 신의료기술 비급여 청구까지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폭증하며 적자 폭을 심화시키는 나비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고무줄 심사 기준으로 지급 거부하는 보험사 편법 엄단…5세대 연동 구조 안착 과제
적자 구조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대형 보험사들이 취하는 우회적 스탠스는 또 다른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보험사들은 신경성형술, 무릎주사 등 고액 비급여 청구에 대해 대법원 판례나 분조례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 '입원 필요성이 없다'며 일방적으로 통원 보험금 한도(20만~30만원)만 지급하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 치료비를 보전받지 못한 서민 가구와 보험사 간 분쟁 건수가 폭증하고 있으며 지난해 신경성형술 관련 분쟁은 전체 실손보험 분쟁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하반기부터 보험사들의 부당한 심사 행태에 대해 강력한 칼날을 빼 들 방침이다. 당국은 중요한 보험금 심사 기준 변경 시 소비자 사전 안내를 의무화하도록 하고 약관을 무시한 채 고무줄 잣대로 지급을 거절하는 보험사에 대해서는 즉시 기습적인 현장조사를 실시해 엄단하기로 했다.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 정부는 지난달 출시된 '5세대 실손보험'의 세대 교체 구조 안착에 사활을 걸고 있다. 5세대 실손은 건강보험 정책과의 연계성을 강화해 본인부담률을 연동하는 한편, 과잉 진료의 온상이었던 도수치료 등 비중증 비급여 특약의 자기부담률을 50%까지 대폭 상향하고 연간 보상 한도를 1000만원으로 제한하는 방어 기제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은 "다음달부터 도래하는 4세대 가입자들의 순차적 재가입 주기(5년) 전환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비급여 과잉 이용 방지를 위한 보건당국과의 합동 모니터링 체계를 확립해야만 실손보험을 투기장으로 만드는 일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서민들의 부당한 보험료 연쇄 인상 폭탄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결신문 / 김민준 기자 livek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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