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코리아', 대(大)문명 전환기 새로운 국가 경영 체계(OS)를 향해

김용대 칼럼니스트 / 2026-06-15 18:30:35
미·중 디지털 패권 경쟁, 미래 세계 운영체계 둘러싼 문명 전쟁으로 번져
미국은 내부 균열, 중국은 매력 한계···한국에 열린 ‘표준국가’의 시간
기술 민주주의와 퍼스트 코리아···산업문명 이후 새 질서 설계해야 할 때
미국과 중국이 미래 세계의 OS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 한국이 새로운 디지털 문명의 표준 모델을 제시할 기회를 맞고 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김용대 칼럼니스트] 문득 이병한 역사학자 겸 작가의 거대 담론이 필자의 귀에 들어왔다. 그는 원광대학교 HK교수, 태재홀딩스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젊은 사회학자로, 아시아 중심의 새로운 유라시아 질서와 동방 문명론을 옹호하는 독창적인 주장을 펼쳐 주목받아 왔다. 이 칼럼은 그의 주장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패권 경쟁은 강대국 간 단순한 힘겨루기를 넘어 산업 문명 이후 등장한 디지털 문명의 표준 운영체계, 즉 미래 세계의 OS(Operating System)를 누가 먼저 설계하느냐를 놓고 이뤄지는 싸움이다. 200년 전 미국이 산업문명의 제도와 표준을 만들고 세계가 이를 따라갔다면 지금은 디지털 문명의 기준점을 둘러싼 경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문명의 전환과 패권의 전환이 포개어지는 이 특이한 시기, 미·중 경쟁의 핵심은 '누가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선점하고 세계 표준 모델이 될 것인가'로 귀결된다.

중국은 이 경쟁을 국가가 주도한다. '중국제조 2025'로 제조업 고도화에 나섰고 '중국표준 2035'를 통해 기술과 제도 표준을 장악하려 한다. 2049년 세계 1위 국가라는 목표도 분명하다. 공산당이 지방정부와 기업을 끌고 가는 추진력은 강력하다. 이미 '딥시크(DeepSeek)'와 같은 인공지능(AI)을 지방 정부 행정에 도입해 정책적 퍼포먼스를 실험하는 '기술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 중이다.

미국은 중국의 속도를 보며 위기감을 느꼈다. 기존 워싱턴 정치 엘리트에게 나라를 맡겨두면 중국에 질 수 있다는 판단이 실리콘밸리 일각에서 나왔다. 피터 틸이 구상을 만들고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가 프로그램을 세우며 일론 머스크가 전면에 섰다. JD 밴스가 정치적 후계자로 부상한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2036년까지 완성할 '미국 2.0'이다.

그러나 미국의 길은 쉽지 않다. 동부 정치 엘리트와 연방 관료조직, 월스트리트 금융 세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디지털 거버넌스가 확대되면 관료 권한은 축소되고 크립토 금융이 커지면 기존 은행의 지위도 흔들린다. 하버드와 뉴욕타임스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질서 역시 피터 틸식 기술 권력, 신전통주의, 종교 정치와 충돌하고 있다. 미국 내부의 갈등은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도 약점은 있다. 효율적인 국가 운영체계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세계가 따르고 싶은 모델이 될지는 별개다. 200년 전 미국식 제도가 확산된 것은 강해서만이 아니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식 일당 지배와 감시 기반 거버넌스는 한국, 일본, 유럽이 선뜻 따라 하기 어려운 모델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한국의 기회가 열린다. 미국은 내부 갈등으로 지체되고 중국은 매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앞으로 10~20년 사이 디지털 문명의 표준 모델을 둘러싼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제조업, IT, AI,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동시에 갖춘 드문 나라다. 미국이 제조 기반을 보완하려 한국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에게 반만년 역사상 최초로 '패권 국가', 즉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제시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미래 모델을 만들 것인가다. 한국은 국민 전체의 디지털 적응력이 높고, 서울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코스모폴리탄 도시가 됐다. 판교와 같은 기술 거점도 있다. 다만 행정과 정치는 여전히 200년 전 산업문명의 제도 위에서 움직인다. 사회는 디지털로 바뀌었는데 국가는 낡은 운영체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적 민주주의다. 중국이 기술 공산주의를 실험하고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기술 공화국을 상상한다면 한국은 AI와 집단지성, 시민 참여를 결합한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제안해야 한다. 현재의 진보와 보수는 여전히 산업문명 시대 언어로 싸우고 있다. 10대, 20대, 30대가 살아가는 디지털 현실과 정치의 언어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문명이 바뀌면 인재를 뽑고 권력을 운영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농업문명 시대의 과거제는 산업문명으로 넘어가며 폐지됐고 선거제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제 디지털 문명에 맞는 리더십 선출과 정책 결정 방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그 실험을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퍼스트 코리아'는 한국만 잘살자는 구호가 아니다. 한국이 먼저 미래 운영체계를 만들고 세계와 나누자는 제안이다. K팝이 세계적 재능을 모아 글로벌 무대를 장악했듯 정치와 행정도 세계적 감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분열의 에너지를 정쟁이 아닌 제도 혁신으로 돌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 중심의 '아메리카 퍼스트'처럼 자신들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외쳤던 '만국활계(萬國活計, 전 세계를 살릴 계획)'의 스케일이다. 한국이 세계의 기준점을 제시할 기회가 눈앞에 와 있다.

예결신문 / 김용대 칼럼니스트 yong6601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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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자체 예산 결산 등의 재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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