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금이 마지막 모습···출구없는 초고층 아파트, 자산 가치는 어디에?

김용대 칼럼니스트 / 2026-08-04 14:09:50
재건축 신화의 종말과 '고층 아파트'의 재앙···건물이 아닌 '땅과 사업성'을 보라
노후 주거지 가치는 '개발 여력' '유지 관리' '거주자 지불 능력'
'자산'에서 '안전'으로···40대 이후 주거 선택과 인테리어가 바꿔야 할 패러다임은?
용적률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고층·초고층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인구 감소와 공사비 급등이 맞물리면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건축'이라는 출구 없는 아파트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김용대 칼럼니스트]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지탱해 온 '아파트 불패론'의 핵심 동력은 낡은 집을 허물고 더 높이 지어 이익을 남기는 '재건축 순환 구조'였다. 그러나 용적률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고층·초고층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인구 감소와 공사비 급등이 맞물리면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건축'이라는 출구 없는 아파트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파트는 사는 순간 완성되는 자산이 아니라 매년 막대한 유지관리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30년 뒤 살아남는 아파트와 슬럼화되는 아파트의 격차는 단지 입지나 브랜드가 아닌 '다시 지을 수 있는 구조인가'와 '높은 관리비를 감당할 수 있는가'에서 갈릴 전망이다.

재건축 순환 구조의 균열…'아파트 불패론'이 멈춰 선 이유
세계 부동산 시장에서 건물이 낡을수록 가격이 오르는 현상은 한국이 유일했다. 해외에서 주택은 연차가 쌓일수록 감가상각되는 자산이지만 한국에서는 소비자가 건물이 아닌 그 아래의 '땅'과 '재건축 사업성(용적률)'을 샀기 때문이다.

과거 5~10층짜리 저층 아파트를 20~30층으로 다시 지을 때는 일반 분양물량이 늘어나 조합원의 부담금 없이도 큰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30~40층으로 지어진 고층 단지는 더 이상 층수를 올려 사업성을 확보할 여지가 없다.

여기에 최근 5년 사이 공사비가 30% 이상 상승하고 인구 감소가 가시화되면서 과거의 성공 공식은 완전히 해체됐다. 30년 뒤 아파트의 가치는 '이 아파트는 다시 지을 수 있는가, 아니면 지금이 마지막 모습인가'라는 질문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2002년 타워팰리스 등장 이후 초고층 아파트는 최상류층의 지위를 나타내는 기호이자 랜드마크로 소비돼 왔다. 그러나 건축법상 50층 이상 초고층 건축물은 피난안전구역 확보, 소방 설비 강화, 고강도 콘크리트 사용 등으로 인해 일반 아파트(평당 공사비 약 600만원 수준 기준) 대비 공사비가 평당 1000만원 이상으로 치솟는다.

진짜 문제는 입주 후 20~30년이 지나 설비 교체 주기가 도래할 때 발생한다. 초고층 건물은 고속 엘리베이터, 고층 급수 설비, 외벽 유지보수 등 고정 관리비가 구조적으로 비싸다. 해외 고층 주거의 실패도 같은 경로를 보여준다. 미국 프루이트아이고, 영국 로난포인트, 프랑스 그랑상블은 건물이 낡는 속도보다 관리 능력이 먼저 무너지면서 슬럼화와 철거로 이어졌다. 건물이 낡는 속도보다 관리 능력이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아파트가 슬럼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유자들의 높은 지불 능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초고층 아파트는 철거 공법조차 난해해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유자 중 일부가 관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수선이 밀리기 시작하면 여력 있는 주민부터 떠나고 남은 자의 부담이 커지는 '슬럼화 악순환'에 직면하게 된다.

노후 준비로서의 집…집값보다 '내 몸의 치수'를 먼저 봐야
한국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로 미국·일본(30~40%)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국가 복지가 미비했던 시절 집은 저축이자 노후 대비책이었으나 은퇴 후 40대 이후의 집은 '팔기 위한 자산'이 아니라 '20~30년을 안전하게 살아낼 공간'으로 전환돼야 한다.

김지호 건축가는 "고령자 안전사고의 60% 이상이 낙상 사고이며 대부분 수십 년간 살아온 익숙한 집안(욕실, 침실 동선)에서 발생한다"며 "30대의 몸에 맞춰진 집의 치수와 노화된 70대의 몸 사이의 간격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통창과 조망권을 갖춘 고층 아파트는 화려하지만 지상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넓혀 노년의 외출 빈도를 떨어뜨린다"며 "노년 의학에서 확인되듯 걷는 양과 타인과의 접촉 빈도는 신체·인지 건강과 직결된다. 풍경이 좋은 집보다 슬리퍼를 신고 1층 마당으로 나가기 쉬운 저층·접지성 높은 집이 노후 건강에 훨씬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노년층의 의료 수요는 응급 상황보다 만성질환 관리가 대부분이다. 대형병원 바로 앞은 소음과 교통 혼잡으로 삶의 질이 떨어진다. '차로 10~20분 거리의 응급실'과 '걸어서 10분 거리의 동네 의원·약국·마트'가 갖춰진 평지 입지가 최적의 조건인 셈이다.

1억 쓰고 후회하지 않으려면…50대 이후 인테리어의 3대 원칙
집을 고치는 인테리어 역시 외부인의 시선을 의식한 '보여주기 위한 집'에서 거주자의 안전을 위한 '살기 위한 집'으로 옮겨가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호텔식 간접조명, 무몰딩, 대리석 타일, 아일랜드 주방 등은 사진에는 잘 나오지만 관리 노동을 과도하게 요구하고 고령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20~30년 된 구축 아파트는 마감재(도배·마루)보다 배관, 전기, 창호, 방수층이 먼저 수명을 다한다. 안 보이는 기반 설비를 교체하지 않고 겉만 고치면 누수나 전기 용량 부족으로 인해 공사를 두 번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시력이 떨어지므로 기본 조명은 충분히 밝게 확보해야 하며 미끄러운 유광 대리석·포세린 타일 바닥은 낙상 시 치명적인 부상을 유발하므로 피해야 한다. 독립한 자녀의 방을 1년에 며칠 오지 않는 손님용으로 비워두는 것은 공간 낭비다. 부부 각자의 서재, 취미실, 운동 공간으로 개조해 일상 활동의 밀도를 높이고, 수면 공간을 분리하는 것이 노년기 부부 관계와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아파트라는 이름만으로 가치가 보장되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아파트의 운명은 ▲용적률 여력이 있어 다시 지을 수 있는 '개발 여력' ▲수선충당금을 제대로 적립해 제때 보수하는 '유지 관리 상태' ▲비용을 감당하고 인프라를 채워줄 '인구 구조' 등 3가지 조건에서 가려질 것이다.

김 건축가는 "노후의 좋은 집이란 집값이나 브랜드, 평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자주 밖으로 나가게 만들고 집안에서 넘어지지 않게 하며 혼자 외롭게 두지 않는 집"이라며 "이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집을 관리하는 사람만이 30년 뒤에도 자신의 자산과 삶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결신문 / 김용대 칼럼니스트 yong660128@naver.com

[ⓒ 예결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용대 칼럼니스트

김용대 칼럼니스트

기업, 지자체 예산 결산 등의 재무 분석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