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상호관세’라는 무기가 좀처럼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달 초 “America First”를 외치며 ‘미국 부흥’을 이끌겠다던 그 호기로움은 어느새 보이질 않는다. 전 세계가 강경 대응에 나서자 오히려 미국이 고립될 거란 우려가 자국 내에서 나온 탓이다.
트럼프가 가장 세게 펀치를 날린 국가는 중국이다. 처음 부과한 관세율은 고작(?) 54%였다. 이후 양국은 관세 올리기 경쟁에 돌입했다. 중국의 대미 관세는 84%에서 125%로 올리며 맞대응했고 미국도 대중 관세를 125%로 인상한 후 또다시 245%까지 확대해 버렸다.
여기서 중국은 관세를 더 올리는 대신 노선을 선회했다. 84%에서도 이미 대미 수출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숫자 전쟁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은 과거 트럼프 1기 때 무역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어 그를 상대하는 방법을 안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미국을 흔들기에 나섰다. 중국에는 큰 무기가 여러개 있다. 희토류와 미국 채권이다.
희토류는 반도체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다. 가장 큰 수요국이 바로 미국인데 희토류가 없다면 반도체와 무기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 14일 희토류의 대미 반출을 금지했다. 당장 미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음 무기는 채권이다. 중국은 올해 1월 기준 약 7610억 달러(약 1088조원) 규모의 미국 채권을 보유했다. 이는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수치다. 중국이 이를 맘먹고 처분해 미국 금융시장을 교란한다면 미국은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이 경우 중국 또한 위안화 매수 문제 등으로 경제가 휘청이겠으나 그건 차후 문제다.
또 다른 무기도 있다. 중국 내 대규모 애플과 테슬라 공장이다. 미국 시총 1위인 애플은 전 세계 아이폰 출하량의 95%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대중국 관세 적용시 아이폰의 미국 판매가가 한화 500만원에 달할 거라는 얘기는 더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작년 테슬라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한 거대시장이다. 중국이 애플과 테슬라의 발목을 잡는 일은 누워서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이 중국 내 생산시설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공장 건설에만 몇년이 걸리는 데다 베트남이나 인도 역시 미국이 관세를 30~40%대나 매긴 상태라 실익도 없다.
이에 트럼프는 즉각 “나는 시진핑 주석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며 “언제든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꼬리를 내렸다.
이어 그는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등 부문에 상호관세가 아닌 개별 물품 관세를 적용하겠다거나 시장 우호 조치를 하겠다는 둥 사실상 항복한 모습을 연출했다.
■ 이대로 무너질 트럼프가 아니다···분풀이 대상은 ‘만만한 한국’
중국에 이어 캐나다, 멕시코, EU까지 대미 강경 대응을 천명하자 더는 ‘매드맨’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트럼프는 다음 전략으로 ‘만만한 우방국 때리기’를 택했다. 그에게는 언제나 미국에 머리를 조아렸던 일본, 영국, 호주, 인도 그리고 한국이 있다.
특히 그는 ‘대통령 부재’로 한동안 대화 상대에서 배제했던 우리나라를 가장 먼저 선택했다. 지난 14일 한덕수 권한대행 총리와의 통화가 그것이다.
자세한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한 총리는 미국의 대한국 상호관세 적용 90일 유예와 스마트폰·컴퓨터 등 일부 품목의 상호관세 부과 대상 제외 방침에 대해 “나와 통화한 이후”라며 우쭐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해 해결점을 만들어 가겠다”고도 했다. 전형적인 대선 행보다.
트럼프 또한 “그레이트 콜”이라며 흡족해했다. 뭔가 얻을 게 충분했던 모양이다. 바로 알래스카 LNG 사업이다. 미국의 에너지 숙원사업이지만 다수의 국가가 발을 뺐다. 기후가 워낙 나빠 공사가 만만치 않은 데다 대규모 투자가 소요돼 비용 회수가 요원해서다. 여기에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도 걸려있다. 한술 더 떠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관련 사안 논의를 위해 다음주 미국행에 나선다고 한다.
유명 경제평론가 박시동 위원은 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다른 나라들은 협상 지연 내지 맞대응 전략을 펴는데 왜 한국이 맨 먼저 나서 트럼프 홍보에 이용당하냐는 것이다.
그는 “한 대행과 최 장관의 행보는 정치적 목적에 기반한다”고 단언했다. 윤석열 내란 동조 혐의를 받는 이들이 자신들의 지위 보존에 미국을 활용한다는 판단이다.
또 그는 “트럼프가 한국을 대상으로 ‘원스톱 쇼핑’을 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뭘 퍼주러 가는지 의심스럽다”며 “다른 나라들의 협상을 지켜본 후 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신들의 결정이 다음 정부에 크나큰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들이다. 더구나 그들은 50여일 후면 물러나야 하는 신세다. 대한민국이 풍전등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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