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한 홈플러스가 전국 15개 점포의 추가 폐점을 공식화했다. 회사 측은 “임대료 협상 결렬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하지만, 업계와 노동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투자 구조와 누적된 재무 취약성에서 찾고 있다. 단순한 임대료 문제가 아닌, 차입매수(LBO)와 자산 매각, 고금리 차입 의존이 겹쳐 발생한 구조적 위기라는 분석이다.
■ 임대료 조정 없인 연 800억 손실?…'주객전도' 아닌가
홈플러스는 지난 13일 긴급 발표를 통해 서울 시흥·가양, 경기 일산·안산고잔·수원원천·화성동탄, 충남 천안신방, 대전 문화, 전북 전주완산, 대구 동촌, 부산 장림·감만, 울산 북구·남구점 등 15개 점포를 순차 폐점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임대료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간 영업손실만 약 800억 원에 달한다”며 “폐점 점포 직원의 고용은 100% 보장하고 인근 점포 전환 배치와 지원금 지급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로 전체 점포 수는 기존 125개에서 102개로 줄어든다.
홈플러스는 임대료 부담을 위기의 주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MBK 인수 이후 진행된 자산 유동화 전략의 결과라는 비판이 크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레버리지드 바이아웃(LBO)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대규모 차입금을 활용해 기업을 인수하는 금융 기법이다.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대규모 대출을 받아 기업을 사들이고 인수 후에는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여 인수 자금의 원리금을 상환하고 차익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주로 사모펀드(PEF)가 잘 활용하는 수법으로, 과도한 레버리지 비율은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후 홈플러스는 자가 점포를 대거 매각하고 임대 점포로 전환하는 '세일 앤 리스백'을 단행, 현금을 챙겨왔다. 인수 당시 89개였던 자가 점포는 56개로 줄었고 임대 점포는 53개에서 70개로 증가했다. 임대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결국 홈플러스는 자산을 잃고 '임대료'라는 고정비만 늘어난 구조로 변질됐다. 이번에 폐점 대상이 된 점포 상당수도 이 같은 ‘재임차 점포’에 해당한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임대료 협상 결렬을 위기의 원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것”이라며 “외부 임대인에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한다.
■ DIP 대출…‘시간을 버는 자금’의 역설
홈플러스는 지난 4월 구조조정 전문 펀드로부터 600억원 규모의 DIP(회생기업 운영자금) 대출을 조달했다. 금리는 연 10%, 만기는 3년이다. 연간 이자만 60억원에 달하는 이 대출은 당장의 운영 자금난을 해소하는 데 쓰였지만, 뚜렷한 회생 전략 없이 고금리 차입에 의존하는 한계만 노출했다.
업계 관계자는 “DIP는 말 그대로 시간을 벌기 위한 자금”이라며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점포 매각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MBK 인수 이후 매년 평균 37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매각해 약 9000억원 상환에 투입했지만, 현금성 자산은 2020년 7865억원에서 올해 2월 기준 1393억원으로 급감했다.
■ 노동자·점주·정치권의 반발…예견된 사태
노조와 입점 점주들은 이번 폐점 결정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마트산업노조는 “폐점은 회생이 아니라 청산의 연장”이라며 “고용 보장 약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입점업주협의회 역시 대통령실 앞 기자회견을 열고 “납품업체 정산 단축과 현금 입금 강요로 입점 업주들이 홈플러스의 생존경영 볼모가 되고 있다”며 “MBK에만 이득이 되는 폐점”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브랜드 가치와 점유율 하락은 경영 실패의 결과임에도 외부 요인만 탓한다”며 MBK의 사재 출연과 자본 확충을 요구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임대료 협상 실패가 아닌 구조적 귀결이라고 분석한다. MBK가 자산을 매각해 단기 수익 회수에 집중한 시점부터 위기는 예견돼 있었다는 것이다. 매각 대금은 부채 상환에 쓰였고, 홈플러스 자체의 재투자와 성장 기회는 사라졌다.
여기에 DIP 대출 등 고금리 차입 의존이 겹치면서 장기적으로 점포 추가 매각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결국 이번 위기는 외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부 구조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 향후 전망…‘시간을 번 청산’ 될 위험
전망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인가 전 M&A 성사를 통한 새로운 투자자 유치다. 그러나 부채 경감과 임대차 재협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난관이 크다.
둘째, 부분 청산·축소 재편이다. 점포 추가 매각과 조직 축소를 통해 연명하지만, 매출과 브랜드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대주주 자본 확충이다. 정치권에서도 요구하는 가장 시급한 대책으로, MBK가 직접 자본을 투입해 재무 구조를 리셋하는 방안이지만, 투자자 수익성과 펀드 성격과 충돌한다는 점이 풀어야 할 숙제다.
홈플러스 사태는 임대료 협상 실패라는 단기적 요인보다 MBK의 투자 구조와 경영 전략에 따른 장기적 불안정성이 본질적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폐점은 단순히 숫자를 줄이는 조치일 뿐 근본 해법은 아니다”며 “자본 구조 재편, 영업 포맷 혁신, 이해관계자 신뢰 회복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긴급 생존경영은 결국 ‘시간을 번 청산’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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