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결신문=신세린 기자]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성경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다. 신은 이런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 노여워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갖게 되는 벌을 받았다. 소통이 되질 않자 이들은 흩어졌고 바벨탑은 무너졌다. 애초 흩어지지 않기 위해 만들고자 한 이 욕망은 오히려 모두를 흩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바벨탑을 쌓길 원한다. 특히 콘텐츠가 부족한 권력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정 스타일은 늘 '상징정치(symbolic politics)'에 기초한다. 한강 르네상스, 새빛둥둥섬, 서울링, 태극기 게양대, 그리고 한강버스까지 모두 도시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오 시장은 정치인이 아니다. 글로벌 메가시티 서울의 살림을 책임지는 행정가다. 행정은 현실을 다뤄야 한다. 하지만 오 시장은 현실 대신 '서울의 품격'이라는 이미지만 쫓았다. 때 이른 강남 지역 토지허가제 폐지,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같은 잘못된 행정으로 이미지를 구긴 그에게 덧씌워진 건 '강남구청장'이라는 멸칭뿐이다.
결국 화려한 상징은 짓다 만 바벨탑이 됐고 남은 것은 예산 낭비와 행정 신뢰의 손상이다.
그에겐 리더십의 면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최근 오 시장은 이번 사업을 추궁하는 국정감사장에서 "한강버스는 사실상 민간기업"이라며 발을 뺐다. 정책 실패의 리스크가 가시화되자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 했던 사업을 순식간에 "내 것 아님"으로 둔갑시키려는 정치적 기회주의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주식회사 한강버스'는 SH가 51%, 이크루즈가 49%의 지분을 가져 실은 민간기업도 아니다. 시는 이 사업을 위해 시민의 세금으로 4억원을 들여 홍보했고 김병민 부시장은 적극 방송에 나와 사업을 옹호했다. 이제 와 민간기업으로 치부하기엔 그동안 시가 보여준 행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 시장은 서울을 '매력 특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에 해외 유명 관광 도시로 출장다니며 벤치마킹을 반복한다.
하지만 '관광 도시'는 허상에 가깝다. 실제 관광 대국이라 불리는 스위스나 스페인 등 국가들은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6%에 불과하다. 진정한 부는 제조업과 기술 산업에서 나온다.
도시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한 성장은 일시적인 관광객 유치나 상징적 유람선 도입이 아니라 도시 공간의 효율적인 재편, 도시 재구조화, 그리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반 시설 투자에서 나온다. 과거의 성공한 도시 개발 사례들이 상징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당시 도시가 직면했던 구조적 문제 해결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작 바벨탑 설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 이후다. 사람들이 흩어진 이후 전 세계는 각기 다른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며 발전했다.
진정한 리더는 단순히 탑을 높이 쌓는 사람이 아니라 그 탑의 기초를 다지는 사람이다. 한강버스는 서울 행정이 상징 정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아이디어'보다 '책임', '이미지'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행정으로의 복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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