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단 노드 공정 경쟁력 기반 제품 믹스 개선 및 수익 구조 다변화
압도적 현금 흐름 기반 무차입 경영 전환 및 주주 환원 정책 강화
[예결신문=김민준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수익 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처럼 범용 메모리를 대량 생산해 시장 가격에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사 수요에 맞춘 고성능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수주형 산업 구조가 뚜렷해지는 흐름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CSP)들의 공격적인 설비투자(CAPEX)가 자리한다. 생성형 AI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데이터센터 증설과 AI 가속기 도입이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국내 메모리 업체들이 글로벌 AI 인프라 확장의 핵심 파트너로 재평가받는 이유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시장에서는 과거 메모리 사이클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수요가 급증하는 것에 비해 단기간에 공급 능력을 크게 늘리기 어렵고 공급사와 고객사 모두 재고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주요 고객사들은 장기공급계약(LTA) 체결과 선제 물량 확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대응도 발빠르다. 삼성전자는 HBM을 포함한 고부가 메모리 비중을 늘리며 제품 구성을 수익성 중심으로 조정하고 있다. 메모리 외에도 파운드리에서 외부 고객 물량을 확대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글로벌 주요 인공지능 가속기향 HBM 최신세대 공급을 통해 제품 믹스를 개선하고 멀티플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 부문에서도 IT용 OLED 시장 확대에 대비해 8세대 생산 준비를 진행하면서 AI 시대 전방산업 변화에 맞춘 대응 폭을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범용 메모리 생산 능력에서 갖는 규모의 이점이 가격 상승 국면에서 더 큰 실적 레버리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SK하이닉스는 HBM 경쟁력을 앞세워 AI 메모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고다층 낸드 개발과 기업용 SSD 경쟁력 강화까지 더해 AI 데이터센터와 온디바이스 AI 확산 수요를 동시에 노리는 구도다. 자회사 솔리다임과의 연구개발 협업도 낸드 사업 체질 개선의 변수로 꼽힌다. 메모리 산업 내에서 HBM 중심 성장과 낸드 수익성 회복을 함께 추진하는 전략이 실적 재평가의 핵심 포인트로 거론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AI 모델 훈련 및 추론에 대한 수요 확대 속에 필요한 메모리를 우수한 품질로 적기에 공급하여 시장 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낙관하긴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AI 가속기 성능 경쟁이 빨라질수록 메모리 사양도 더 빠르게 고도화돼야 하고 공정 전환 속도와 수율 안정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추격, 미국 빅테크의 투자 속도 조절 가능성도 점검해야 할 변수로 꼽힌다.
재무 측면에서는 긍정 신호가 뚜렷하다. 고성능 메모리 중심의 실적 개선이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현금 창출력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재무 안정성이 강화되고, 향후 배당·자사주 등 주주환원 정책 여력도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 자금 유입 기대가 다시 커지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AI 인프라 확대 국면에서 국내 기업들이 범용 공급자에서 전략적 수주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술 격차를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래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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