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결신문=김용대 칼럼니스트] 코스피가 숨 가쁘다. 사상 최고치 경신이 일상이 됐고 해외 자금의 시선도 오랜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랠리의 기쁨과 별개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상승은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그리고 모두가 속으로만 묻는 그 질문—“코스피 5000, 가능한가?”
나는 최근의 랠리를 세 가지 엔진으로 본다. 첫째, AI-메모리 업사이클이다. 학습(트레이닝)을 넘어 실사용(인퍼런스)까지 데이터 수요가 폭발하면서 HBM·DRAM 가격과 가동률이 살아난다. 한국 시장은 시가총액 상위의 이익이 메모리에 직결돼 업사이클의 탄력이 곧바로 지수로 번진다. ‘스토리’가 아니라 실적 레버리지라는 점이 핵심이다.
둘째, 정책·제도 개편의 힘이다. '주주환원', '지배구조', '세제 개선'으로 요약되는 흐름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묵은 숙제를 정면으로 치고 있다. 정책은 금융시장에서 신뢰의 언어다. 발표 자체보다 실행의 지속성이 멀티플(배수)을 바꾼다. 일본식 거버넌스 개혁이 수년을 견뎌 효과를 냈듯 한국도 끊임 없는 추진이 관건이다.
셋째, 글로벌 사이클이다. 달러와 금리의 방향 전환 기대가 신흥·아시아로 자금을 재배치한다. 미국 초대형 기술주의 밸류 부담이 커질수록 반도체 체인에 강한 한국·대만·일본의 상대 매력은 부각된다. 이 세 번째 엔진은 외부 변수지만 한국에겐 순풍이다.
그렇다면 5000은? 산술은 간단하다. 지수 3400대에서 5000은 약 47% 추가 상승이다. 나는 이를 이익(EPS) 증가 × 밸류에이션(PER) 확장으로 분해해 본다.
기본 시나리오는 메모리 호황과 수출 회복으로 2년 누적 EPS 25~30% 증가다. 거버넌스·세제 개선이 투자자 신뢰를 얻어 PER 10배 → 12배(약 20% 확장). 곱하면 50% 내외의 업사이드가 그려진다. 5000, 계산상 가능권이다.
낙관 시나리오는 EPS 35%+에 PER 13배 접근이다. 대형 반도체의 지수 기여도를 감안하면 5000 상회도 열려 있다.
마지막으로 보수적 시나리오는 EPS 15~20% 증가에 PER 정체(혹은 금리·환율 역풍) 상황이다. 이 경우 4000대 중반의 횡보 내지 조정이 합리적이다.
결국 답은 '질(質)'에 달렸다. 숫자만이 아니라 숫자를 만드는 구조다. 몇 가지 문턱을 넘지 못하면 5000은 구호로 남는다.
첫째, 실적 확산이다. 반도체와 이차전지의 이익 개선이 금융·산업재·소비로 폭이 넓어져야 한다. 특정 업종 의존이 심할수록 변동성은 커진다.
둘째, 정책의 끈기다. 주주환원·공시·소액주주 권리, 배당·자사주·공매도 제도까지 일관된 시행과 감독이 있어야 멀티플은 올라간다.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새 관행으로 굳어야 한다.
셋째, 외국인 수급의 내구성이다. 달러와 금리의 단기 굴곡에도 순유입 구조가 유지될 장치—세제 중립성, 파생·공매도 제도의 예측 가능성—가 필요하다.
넷째, 공급망 리스크 관리다. 메모리 증설 캡엑스, 경쟁사 행보, 가격 사이클의 굴곡을 흡수할 재무·전략 유연성이 담보돼야 한다.
가능성을 놓고 체크리스트를 살펴 보면 ▲대형주의 컨센서스 상향 속도가 유지되는가 ▲ 배당·자사주·지배구조 공시가 분기마다 진화하는가 ▲ 외인 현·선물 포지션이 달러 변동성에도 견디는가 ▲내수·서비스업 지표가 이익 확산을 뒷받침하는가 등이 꼽힌다. 네 항목 모두 'Yes'라면 5000은 ‘언젠가’가 아니라 ‘언제’의 문제가 된다.
마지막으로 급등기에 필요한 덕목을 '주관적'으로 정리하자면 흥분 대신 루틴이다. 차트를 해석하기 전에 EPS 추정을, 뉴스 헤드라인보다 정책의 세부 문안을, 단기 가격보다 제도의 일관성을 본다면 우리는 ‘운 좋은 랠리’가 아니라 체질이 바뀐 시장을 갖게 될 것이다.
코스피 5000, 숫자가 아니라 '구조'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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