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라운드로 내려온 '일베'의 유희···우리는 멸멸(蔑滅)의 시대를 살고 있다
김민준 기자
livekmin@hanmail.net | 2026-07-01 20:41:25
[예결신문=김민준 기자] 불과 10여 년 전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우리 사회의 격리 대상이자 음지 중에서도 바닥 문화였다.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의 폭식 투쟁, 5·18 민주화운동 폄하, 약자를 향한 무차별적 조롱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는 소수의 일탈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이 같은 괴물 정서가 대한민국의 가장 순수한 스포츠 현장까지 삼켜버린 주류가 된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최근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에서 발생한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광주일고 조롱 사건은 '일베 정서의 주류화'가 어디까지 도달했는지를 증명하는 참담한 이정표였다.
지난달 29일 목동구장 그라운드에서는 정정당당해야 할 고교 스포츠 현장에 일체화된 조롱의 군무가 펼쳐졌다.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은 광주일고를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율동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외쳤다.
또 누군가는 "탱크데이"를 소리치기도 했다. 과거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한 마케팅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던 스타벅스 논란을 가져와 광주 지역 학생들을 모욕하는 무기로 삼은 것이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역사적 비극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도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우월감의 분출이었다.
논란이 일자 배재고 측은 "학생들이 특별한 의도 없이 우발적으로 따라 한 것"이라는 기괴한 경위서를 제출했다. 최초 작성된 사과문 하단에는 인공지능(AI) 제미나이의 워터마크가 발견돼 진정성 논란마저 불거졌다.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오직 '징계를 피하고 사태를 빠르게 무마하기 위한 기술'만 작동한 것이다. 걸리면 사과문을 올리고, 비난이 가라앉으면 아무 피해 없이 빠져나가는 작금의 현상, 그 뻔뻔한 혐오 놀이가 완성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쩌면 애초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몰랐을 수도 있다.
어떤 사회학자는 이를 '조롱하고, 걸리면 사과하고, 무사히 끝내는' 일베식 혐오 드립의 알고리즘이라 부른다.
결국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전국대회 출전 정지'와 경기 몰수패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당장 예정된 경기가 취소되고 선수들의 프로 진출 길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현장 지도자들의 방조, 심판의 무관심, 학생들의 윤리 의식 마비가 불러온 합당한 인과응보다. 그러나 이 징계만으로 그라운드를 더럽힌 혐오의 정서를 뽑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들은 정말 5·18의 역사적 무게를 몰랐기에 우발적인 노래를 부른 것일까.
진실은 그 반대다. 그들은 그것이 상대방에게 가장 아픈 상처를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도발'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혹자들은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가리켜 '극우'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들을 극우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어색하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극우는 자국과 민족을 지나치게 숭상해 타인과 타민족을 배척한다.
하지만 한국형 극우는 기이하게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피해자와 약자를 향해 칼날을 겨눈다. 자국을 침탈한 국가를 노골적으로 편들고 미국, 심지어 우리와 아무 관계 없는 이스라엘을 숭상한다.
이들에게 국가란 보편적 인권과 역사적 정의를 공유하는 시민들의 공동체가 아니다. 오직 승리와 강자만을 숭상하는 세계관 속에서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시민은 언제든 짓밟고 조롱해도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배재고 야구부 사태는 결코 일탈한 10대 소수의 우발적인 장난이 아니다. 정치권의 극단적인 진영 논리, 가짜 뉴스를 나르는 알고리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혐오 표현을 방조하고 오히려 전략적으로 채택해 온 기성 사회의 타락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음지에 있어야 할 조롱의 문법이 주류의 언어가 돼 가면서 우리 청소년들은 그것을 유머와 표현의 자유라는 탈을 쓴 놀이로 학습한다.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냉소의 태도, 약자를 짓밟으며 얻는 가짜 우월감이 대한민국의 공론장과 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배재학당의 설립자 아펜젤러 선교사가 남긴 이 고귀한 교훈은 100년이 넘는 야구부의 역사 속에서 무참히 바스러졌다. 혐오를 뿌린 자리에는 결국 파멸이라는 열매가 맺힐 뿐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고교 야구부의 인성 논란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의 인문적·윤리적 기반이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있는 현실이다. 어쩌면 재생 불가능한 지경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우리는 올바른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 시민적 품격을 교육하고 이를 공론장의 중심으로 다시 올려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그라운드에서 낄낄대던 그 조롱의 구호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될 것이다.
예결신문 / 김민준 기자 livekmin@hanmail.net
[ⓒ 예결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