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별 하반기 전망] ① 반도체: AI 열풍 2막···'HBM 독점' 깨지고 범용 메모리가 실적 바꾼다
신하연 기자
beliga23@naver.com | 2026-05-25 16:48:27
서버 DRAM·기업용 SSD 품귀 가중···빅테크와 3년 장기계약으로 실적 굳혔다
공정 미세화 난도 급상승에 공급 차단 효과···하반기 피크아웃 우려 정면 반박
[예결신문=신하연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이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고 훈련하는 '학습' 중심의 1단계에서, 실제 서비스를 구동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추론(Inference)' 중심의 2단계로 전환점에 진입했다.
초기 시장이 연산 장치인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단독 독식 구조였다면 올 하반기는 서비스를 돌리는 데 필수적인 서버형 DRAM, 저전력 LPDDR, 대용량 기업용 SSD(eSSD) 등 범용 메모리 전반의 장기 구조적 성장세가 본격화되는 시점이다.
거시경제적 유동성 확대 환경 속에서 AI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 집행 여력은 여전히 견고하며 이는 메모리 반도체 전 부문의 공급 부족 강도를 가속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5일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인공지능 관련 주요 언어모델의 토큰 사용량은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연초 대비 수 배 이상 폭증했다. 수요의 폭발적 팽창에 비해 주요 AI 테크 기업들의 현금흐름(Cash Flow) 대비 설비투자 비율은 약 65%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는 과거 1990년대 후반 정보기술(IT) 버블 당시 통신·미디어·기술(TMT) 기업들의 고점 비율이었던 105%와 비교해 여전히 질적으로 안정적인 자본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공급이 자본 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하기보다 매출 및 주가 상승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도리어 확대하는 선순환 경로를 형성하는 가운데, 공정 난이도 상승에 따른 공급 병목의 중심축은 연산 장치에서 메모리 반도체 체인으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업계 전문가는 "현재 AI 인프라 투자는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초기 학습 시장에서는 HBM이 공급 부족을 주도했으나, 현재는 서비스 추론 단계로 영역이 확장되면서 CPU, ASIC 생태계와 맞물린 서버향 고용량 DRAM 및 eSSD 부품의 수요가 동반 증가하는 단계"라며 "향후 온디바이스 AI와 자본재 로봇, 자율주행 등 에지 디바이스 확산이 본격화될수록 LPDDR 규격 중심의 수혜 가시성이 전방위로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년 장기계약 도입이 가져온 패러다임 변화와 피크아웃 논쟁의 본질
하반기 반도체 업황을 관통하는 가장 유의미한 구조적 변화는 메모리 공급사와 하이퍼스케일러 간의 '다년 장기계약(Long-Term Agreement)' 체제 정착이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분기별 협상을 통해 단가 변동성이 극대화되는 전형적인 시클리컬(종합경기순환) 특성을 보여왔다.
그러나 AI 서버 구축에 필수적인 고스펙 메모리의 안정적 확보가 테크 기업들의 생존과 직결되면서 최소 1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의 장기 공급 물량과 가격 밴드를 사전 확정하는 계약 형태가 주류로 안착했다.
이 같은 계약 형태의 변화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향후 수요 둔화 시 공급 물량이 조기에 고정돼 실적 성장의 상단이 닫히는 '사이클 피크아웃(Peak-out)'의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하지만 데이터 기반 분석 결과 이러한 다년 장기계약은 피크아웃의 신호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운사이클의 방어해 주는 안전장치에 가깝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선단 공정인 1b나노미터(nm) 및 향후 전개될 1c나노 안팎의 공정 미세화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웨이퍼 투입량을 늘려도 실제 생산 가능한 넷다이(Net Die) 가동률 증가분은 과거 사이클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기존 D램 생산라인의 상당 부분이 HBM 제조를 위한 TSV(관통전극) 공정으로 전환되면서 일반 범용 D램의 유효 공급량 자체가 구조적으로 위축됐다. 즉, 장기 계약을 통한 물량 고정은 수요의 급감이 없는 한 공급 부족을 장기화시켜 제조사의 가격 협상력을 하반기 내내 유지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에지 디바이스 확산과 낸드 플래시 체질 개선의 동행
추론 시장의 확장은 데이터센터 내부의 장비 교체에 머무르지 않고 개별 스마트폰과 PC, 전장 부품으로 연산 기능이 분산되는 온디바이스 AI의 고도화로 전개 중이다. 고성능 거대언어모델을 온디바이스 환경에서 지연 없이 구동하기 위해서는 단말기 내부의 DRAM 탑재량 증폭이 필수적이다.
이는 기존 스마트폰 교체 주기 정체로 인해 부진했던 저전력 D램(LPDDR5X 등)의 평균 탑재 용량을 세대별로 최소 30% 이상 상향시키는 직접적인 동인이다. 제품 단가(P)의 완만한 유지 속에서 가파른 물량(Q)의 성장이 하반기 모바일 메모리 부문의 실적 방어력을 견인할 구조다.
낸드 플래시 부문 역시 장기 침체기에서 벗어나 확실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고성능 AI 추론 과정에서는 막대한 양의 정형·비정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읽고 써야 하므로 기존 HDD 대비 전력 소모량이 낮고 처리 속도가 빠른 고용량 eSSD의 채택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쿼드러플레벨셀(QLC) 기반의 64TB, 128TB 등 고부가가치 라인업의 가동률이 풀캐파(최대가동) 수준에 근접함에 따라 낸드 플래시 사업부의 영업이익 기여도는 D램 부문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올 하반기 반도체 산업은 일시적 공급 과잉 우려에 따른 업황 둔화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분석이다. 거시적인 자본 흐름이 유효하고 추론 시장 개화에 따른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진행 중이며, 제조사의 공급 제한 기조와 장기 계약 기반의 가시성 확보가 맞물려 있어서다. 이에 하반기 메모리 공급망 전체의 이익 가시성은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한 궤도를 유지할 구조적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예결신문 / 신하연 기자 beliga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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