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1300만 톤' 공룡의 미래는?···'K-석유화학' 구조조정 시급

신하연 기자 / 2026-09-15 09:14:30
설비 줄여도 중국 특수 안 돌아와···감축 이후 수익원 확보가 관건
세계 에틸렌 생산능력 2024년 수요보다 4100만톤 많아···범용제품 공급과잉 고착
정유·석화 통합도 증설로 이어지면 역효과···감축·유지·전환 설비 선별 필요
고부가 소재 개발 넘어 고객사 인증·양산이 과제···지역 고용 재배치도 전환 성과로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단순한 경기 순환적 침체 국면을 넘어 성숙산업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심각한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신하연 기자]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단순한 경기 순환적 침체 국면을 넘어 성숙산업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심각한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글로벌 공급과잉 심화와 최대 수출국이었던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 그리고 미국과 중동의 강력한 원가경쟁력 공세 속에서 기존 나프타 기반 범용제품 대량생산 및 수출 모델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내 산업의 전환 과제로 설비합리화와 미래 성장기반 재편의 연계 방안이 제시됐다. 감축 규모뿐 아니라 남길 생산기반과 전환할 사업을 함께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고객에서 경쟁자로…생산능력 확대가 수익성 압박으로
15일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전세계 에틸렌 생산능력은 약 2억2500만톤으로, 수요인 약 1억8400만톤을 4100만톤 웃돌았다. 수요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대규모 유휴 생산능력이 가격 상승을 제약할 수 있는 구조다.

한국은 내수만으로 생산능력을 소화하기 어려워 충격이 크다. 현재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1280만톤으로,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생산능력이 연평균 6.25% 증가한 반면 내수시장 수요 증가율은 3.1%에 그쳤다. 해외 판로 확대를 전제로 설비를 늘렸지만 최대 수요처였던 중국이 자급률을 높이면서 수출 기반이 약화했다.

원료비 부담도 겹친다. 한국의 주력 생산기반인 나프타분해시설(NCC)은 원유가격에 연동되는 나프타를 사용한다. 미국의 저가 에탄 기반 설비나 중동의 저가 원료 기반 생산체계에 비해 비용경쟁에서 불리하다. 공급과잉으로 제품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료비 상승이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

NCC가 에틸렌 외에 프로필렌·부타디엔·방향족 등 다양한 기초유분을 함께 생산한다는 장점도 압박받고 있다. 중동의 정유·석유화학 통합 확대가 제품군 다변화로 이어져 한국 설비의 상대적 강점을 약화시킬 수 있다. 중국은 판로를 좁히고 미국·중동은 원가와 제품 경쟁을 강화하는 복합 압력인 셈이다.

감축 목표만으로는 부족…정유·석화 통합도 생산능력 순증 경계해야
정부·산업계의 NCC 감축 방향은 270만~370만톤 규모다. 다만 총량 목표가 제시됐다는 사실만으로 설비 재편의 적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수익성만으로 폐쇄 대상을 고르면 첨단산업에 필요한 소재 생산기반까지 축소할 수 있고, 반대로 통합을 명분으로 경쟁력이 낮은 설비를 유지하면 공급과잉 해소가 지연될 수 있다.

정유·석유화학 통합 역시 효과를 따져야 한다. 정유공정의 나프타·LPG·중간유분을 석유화학 생산과 연결하고 저장시설·물류·유틸리티를 공동 활용하면 비용을 낮출 여지가 있다. 그러나 통합투자가 기초유분 생산능력의 추가 확대로 이어질 경우 산업 전체의 수급 불균형은 오히려 심해질 수 있다. 개별 기업의 비용 절감과 산업 전체의 공급과잉 해소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유·석화 통합이 미국·중동과 같은 저가 원료 우위를 확보하는 해법도 아니다. 설비합리화와 연계해 기존 자산의 효율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국회미래연구원은  사업재편 대상 설비를 구조적 감축, 고부가 제품 전환, 원료·공정 전환, 전략적 유지 대상으로 구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후도·가동률·원가뿐 아니라 해당 설비가 공급하는 소재의 국내 공급망 중요도와 기술전환 가능성까지 판단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출처: 국회미래연구원 자료 재구성

고부가 전환도 인증·양산 넘어야…지역 고용은 재배치 실적으로 평가
설비 감축 이후의 대안으로 꼽히는 고부가 소재도 생산 품목을 바꾸는 것만으로 경쟁력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연구원은 중국이 고급 폴리올레핀과 전자화학품 등으로 자급화 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지적했다. 범용제품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진입의 장벽도 높다. 반도체·배터리·전력기기용 소재는 기술개발 이후에도 고객사의 품질평가와 공정적합성 시험, 인증, 양산 검증을 거쳐야 한다. 연구개발 성과가 실제 납품과 매출로 연결되지 않으면 설비 전환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또 연구원은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등의 성장을 초고압 케이블 절연재, 난연·고내열 소재, 냉각·절연 전자재료의 수요 기회로 제시했다. 다만 이는 확정된 성장 실적이 아닌 전환 가능성이다. 실제 수요기업과의 공동개발, 인증 가능성, 장기구매계약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역경제 대응도 별도 과제로 남는다. 여수·울산·대산에 집중된 설비가 줄면 협력업체와 항만·물류, 지역 고용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 이에 공정운전·설비·안전·환경 분야 숙련인력을 고부가 소재와 순환원료 등으로 재배치하고 유휴부지·배관·저장시설을 전환산업에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연구원은 "사업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 이동을 연착륙시키고 친환경·고부가 소재 생산기지로 지역 단지를 재구성하는 정부 차원의 종합 지원책이 신속하게 실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결신문 / 신하연 기자 beliga23@naver.com

[ⓒ 예결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신하연 기자

신하연 기자

기업, 지자체 예산 결산 등의 재무 분석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