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3500억 달러 빅딜’ 타결···산업 지형 바꾸는 구조적 전환점

백도현 기자 / 2025-07-31 18:18:23
31일 한미 양국이 대규모 관세 협상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고 한국은 이에 상응해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약속했다. (일러스트=예결신문)

31일 한미 양국이 대규모 관세 협상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고 한국은 이에 상응해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약속했다. 이번 합의는 단순한 관세 거래를 넘어 한국 산업 전반의 글로벌 전략 재편과 공급망 주도권 강화의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 관세 충격 완화···협상 구조는 ‘방어’ 넘어 ‘재정립’
가장 주목받는 조치는 미국의 상호관세율 15% 적용이다. 기존 한미 FTA 체제하에서 대부분 무관세였던 상황에 비하면 일부 품목은 역진(逆進)이지만, 일본·EU와 같은 수준의 관세 체계를 확보함으로써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고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자동차는 기존 25% 관세에서 15%로 인하돼 절대 관세율은 낮아졌으나 한국 입장에서 무관세 혜택이 사라진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멕시코, 일본, EU와 동일 조건을 확보함에 따라 글로벌 가격경쟁력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논의에서 빠진 철강·알루미늄은 기존 50% 관세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든 주요국이 동일한 수준으로 적용된 만큼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 3500억달러 투자, 구조 개편 위한 전략적 배치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대미 3500억달러 투자 중 1500억달러를 ‘조선업 협력 전용 펀드’로, 2000억달러를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 핵심 산업 투자로 배정했다. 대부분은 지분투자 대신 대출·보증 중심의 금융형 투자로 구성돼 재정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산업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현금 퍼주기’라는 일각의 비판과 달리, 투자 방식의 유연성과 산업 배치의 정교함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조선업 협력 펀드는 단순한 대미 투자가 아니다. 조선 산업이 거의 붕괴된 미국의 해양 인프라와 선박 재건 수요, 해상풍력 및 방산 함정 확대 정책에 맞춰 한국 조선사들이 현지 모듈 조립기지를 세우고 핵심 기술과 부품은 국내에서 수출하는 구조가 될 전망이다.

이에 한국형 조선 생태계가 글로벌 전략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더 나아가 조선업 투자 구조는 중소기업에도 실질적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대형 조선사가 미국에서 수주하는 프로젝트에 국내 기자재·부품을 패키지로 공급하는 형태가 유력하며 이는 곧 직접 납품 실적 확보→ 수출 확대→ 글로벌 인증 절차 간소화로 이어진다.

기존에는 미국 진출 시 개별 중소기업이 인증, 조달, 리스크를 모두 감당해야 했지만 이번 협력은 대형사 주도로 수직적 진입 경로가 확보돼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효과가 크다.

■ 1000억달러 미국산 에너지 수입···수급 안정 + 가격 협상력 확보
한국은 향후 4년간 미국산 LNG 중심으로 1000억달러 규모의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미 수입의 13%가 미국산인 상황에서 이번 협정은 단순한 확대가 아닌 수급 재배치로, 에너지 안보 강화 및 공급망 안정성 제고로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그동안 알래스카 에너지 개발사업에 한국이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번 협상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은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워낙 기후와 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 성공 확률, 수익성 등이 불확실해 어느 국가도 선뜻 뛰어들지 않았던 분야이기도 하다. 해당 사업엔 일본이 참여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났다.

■ 야권과 언론의 ‘비난을 위한 비난’···‘장기적 안목’ 필요
일부 정치권과 보수 언론은 “굴욕 협상”, “무역주권 포기”라며 비판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자동차 관세와 투자 규모를 문제 삼았고 일부 매체는 “투자만 하고 얻은 것이 없다”는 프레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단기적 관세 수치만으로 평가한 ‘꼬투리 잡기’ 정도로 보고 있다. EU와 일본 역시 수천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관세 절충을 감수했으며, 한국은 특히 일본처럼 무기 수입, 항공기 구입, 농산물 전면 개방, 알래스카 사업 참여 등에서 제외된 유일한 협상국이라는 점에서 성공한 협상이었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만 이번 협상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2주 내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반도체, 전기전자, 의약품 등 주력 품목의 관세 면제 여부가 핵심 의제로 오를 전망”이라며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지금의 실익 논란이 상당 부분 해소되거나, 반대로 심화될 수 있다”고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한미 무역협상은 단순히 관세를 줄이고 돈을 투자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의 산업 전략과 외교 노선이 맞닿아 있는 구조적 전환점”이라며 “협상은 통과의례이고 그 효과는 실행에서 나온다. 지금의 선택이 향후 한국 산업의 질서를 바꿀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기가 아닌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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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현 기자

기업, 지자체 소식과 예산 결산 등 재무상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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