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18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포스코, 현대제철, 현대비앤지스틸, 세아베스틸, 세아제강 등 철강업체들의 잠정 연간 합산 매출액은 전년 대비 6.5% 감소한 68.1조원을, 영업이익은 43.5% 줄어든 2.1조원을 나타냈다.
2년여간 이어진 철강시장의 수급불균형이 판가 하락압력으로 작용하면서 가격 전가가 제약된 데다 판매 부진에 따른 가동률 하락이 고정비 부담을 가중시킨 영향이다.
특히 4분기에는 원료 투입단가 하락에 따른 마진 스프레드 유지·개선에도 전기요금 인상, 재고평가손실, 통상임금 및 사업조정 관련 일회성 비용 등이 수익 하락의 원인이 됐다.
양대 일관제철사(포스코·현대제철)는 중국과의 경쟁이 심화된 품목에서 수익성 저하가 두드러졌으나, 채산성이 높은 자동차용 냉연에서 양호한 마진을 확보, 일정 수준의 이익창출력을 유지했다.

한편, 현대제철은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봉형강 부문에서 실적이 약화되며 저수익 기조가 이어졌으나 4분기 자회사의 미국 관세납부 환급(약 550억원) 등 일회성 이익이 반영되면서 수익성이 다소 개선됐다.
특수강 업체(세아베스틸, 세아창원특수강)의 경우, 부진한 업황에서도 3분기까지 양호한 영업이익을 나타냈다. 하지만 4분기 상당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 연간 기준 저조한 수익성을 보였다.
강관 업체(세아제강)는 에너지용 강관 수출가격의 하락 조정과 건설경기에 연동된 내수시장 부진으로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크게 축소됐으나 이익 규모에서는 나름 선방했다. 세아제강은 4분기에만 1340억원의 대규모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수출마진 개선과 더불어 계열사와 한-미 APA(이전가격 사전합의제) 정산에 따른 일회성 이익이 반영된 결과다.
주요 업체들 전반적으로 수익성 저하가 두드러졌으나 가격 약세 및 감산으로 운전자본부담이 완화되고 비경상적 투자를 제한함으로써 재무안정성이 훼손되지 않는 수준에서 현금흐름을 적절히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올해 들어서도 경기 회복이 더디고 대외 불확실성이 심화됨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의 실적 부담은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내수 부진 이어져⸱⸱⸱해외 여건도 부정적
올해에도 철강 업황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다. 철강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중국의 과잉 생산, 인도 등 신흥시장의 철강 자급률이 높아질 전망이어서다. 수출 또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압박에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먼저 내수를 살펴보면 침체된 건설경기와 제조업 경기 둔화가 국내 철강 수요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건축 착공 면적의 경우 지난 3년간 큰 폭으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에도 공사비 상승과 PF시장 경색 등으로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호조를 보인 자동차 업종 역시 내수경기 둔화와 함께 미국 정책변수가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여기에 주요 기관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2% 수준으로 낮추며 저성장 국면은 계속 이어질 우려도 있다.
해외의 경우 세계 철강 생산의 과반을 차지하는 중국의 수출 공세가 공급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한 각종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 철강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정권에서 미·중 마찰이 심화할 경우 중국 철강 시장의 회복 시기는 더욱 지연될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 철강사들은 감산 폭을 크게 낮추지 않고 있다. 중국 조강생산량은 지난해 10억500만 톤으로, 전년 대비 1.7% 감소에 그쳤다. 자국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도 2020년부터 연간 10억 톤 이상의 조강생산량 추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한 과잉 생산물의 수출 대체가 급속히 확대, 작년 중국 철강 수출은 2015년(1억1200만 톤)에 이은 역대 두번째를 기록했다. 특히 인도를 중심으로 신흥시장의 철강 자급률이 꾸준히 확대되는 점도 부담이다.
가장 큰 우려는 단연 미국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며 미국 통상전략이 대폭 강화될 예정이어서다. 최근 미국은 먼저 캐나다(25%)와 멕시코(25%, 에너지 10%), 중국(10%)에 추가 관세 부과를 명령한 데 이어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품에 25%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품목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다.
이 조치가 현실화하면 미국시장에서 국내 철강업계의 수출 축소는 불가피하다. 한국산 철강의 대미 수출비중은 10% 정도로 일부 물량을 타지역 대체 등으로 보완할 수 있지만, 수출대상국이나 전방산업에까지 관세 영향이 미친다면 수출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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