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 직격탄 맞은 K-배터리 3분기 실적 '초토화'⸱⸱⸱트럼프 2기 '불확실성'에 시계제로
백도현 기자
| 2024-11-14 23:06:10
전기차 수요 둔화·중국발 공급 과잉·AMPC 폐기 우려 등 '삼중고'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전기차 시장의 일시적 수요 정체(Chasm·캐즘)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이차전지 산업 생태계가 3분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전기차 화재 공포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속도 조절이 맞물리며 배터리 셀 제조사는 물론 소재·부품 기업까지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설상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그간 업계를 지탱해 온 미국의 친환경 보조금 정책마저 폐기될 위기에 처해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4일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이차전지 6개사(SK온·삼성SDI·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비엠·SK아이이테크놀로지·SK넥실리스)의 올 3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후퇴했다.
■ SK온 부진에 소재사 '도미노' 타격⸱⸱⸱에코프로비엠 매출 71% 증발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 셀 제조사의 부진이 소재·부품 공급사로 전이되는 '락인(Lock-in) 효과'의 역설이다.
현대차와 포드 등을 주요 고객사로 둔 SK온의 3분기 매출액은 1조430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 급감했다. 영업이익은 240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나 이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 608억원이 반영된 결과다. 보조금을 제외하면 사실상 368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셈이다.
SK온의 가동률 하락은 밸류체인으로 묶인 협력사들에 직격탄을 날렸다. SK온을 주거래처로 둔 양극재 기업 에코프로비엠은 매출이 5219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71%나 폭락했고, 영업손실 412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분리막 제조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와 동박 제조사 SK넥실리스 역시 매출이 각각 72%, 55% 줄어들며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특정 셀 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수직 계열화 구조가 불황기에는 독이 됐다는 분석이다.
그나마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각화된 삼성SDI와 포스코퓨처엠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소형전지와 전자재료 부문의 수익성을 바탕으로 129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다만 매출은 3조9356억원으로 전년 대비 34% 감소했다. 포스코퓨처엠은 LG에너지솔루션 등 거래처가 다변화된 덕분에 매출 감소 폭(-28%)을 줄이며 14억원의 영업이익을 지켜냈다.
■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구조적 수요 침체 장기화
업계는 이번 실적 충격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전기차 시장의 구조적 성장통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우선 고금리 기조와 보조금 축소로 전기차의 실질 구매 가격이 상승했다. 여기에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HEV) 차량 대비 가파른 중고차 가격 하락세는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총소유비용(TCO) 측면에서 전기차의 메리트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 주요국이 배출가스 규제 속도를 조절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탑재량이 적은 하이브리드(HEV) 위주로 판매 전략을 수정한 것도 악재다. 순수 전기차(BEV)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배터리 출하량 회복 시점도 덩달아 지연되고 있다.
공급 과잉 우려도 여전하다. 2026년까지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계획된 대규모 생산 시설이 가동을 시작하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
■ 트럼프 2기 '그린 뉴 스캠'⸱⸱⸱보조금 중단 시 '생존 위기'
무엇보다 가장 큰 리스크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녹색 사기(Green New Scam)'로 규정하고 취임 즉시 IRA 세액공제 폐지와 파리기후협약 재탈퇴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국내 배터리 3사는 그동안 미국 현지에 조 단위의 투자를 단행하며 IRA 보조금(AMPC)을 수익의 핵심 축으로 삼아왔다. 당장 이번 3분기 SK온의 흑자도 AMPC 덕분이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행정명령을 통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경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즉각적인 적자 전환은 물론 현지 공장 운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한, 트럼프 당선인이 내연기관차의 연비 규제를 완화하고 전기차 전환 의무를 폐지할 경우 미국 내 전기차 전환 속도는 급격히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 치명적인 매출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업계 한 전문가는 "캐즘이라는 시장적 요인에 트럼프 리스크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져 내년 상반기까지는 실적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계제로' 상황"이라며 "단순한 물량 확대보다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를 통해 생존 전략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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