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2200조의 꿈', 47일 만에 신기루로⸱⸱⸱1000억 날린 '대왕고래' 미스터리 셋

백도현 기자

| 2025-02-06 21:30:46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47일간의 시추 작업 끝에 6일 공식 폐기됐다. (사진=석유공사)

[예결신문=신세린 기자]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4배', '2200조 원의 경제 가치', '산유국의 꿈' 

지난여름 대한민국을 달궜던 이런 화려한 수식어들이 결국 차가운 동해 바다로 가라앉았다. 동해 심해 가스전 시추 사업,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시추 작업 47일 만에 '빈손'으로 막을 내리면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일 "시추 작업은 지난 4일 마무리됐으며, 분석 결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의미한 가스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부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1000억원이라는 막대한 혈세가 허공으로 사라진 뒤였다.

문제는 이번 실패가 단순한 자원 개발의 불확실성에 기인한 '기술적 실패'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의 철수 경고를 무시한 무리한 추진, 총선 참패 직후 대통령이 직접 나선 이례적인 발표, 그리고 특정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이권 카르텔' 의혹까지. 대왕고래가 남긴 것은 석유가 아니라 해소되지 않은 숱한 의혹들뿐이다. 본지는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실패까지, 그 뒤에 숨겨진 3대 미스터리를 심층 분석했다.

■ 미스터리 1. 우드사이드가 버린 카드, 왜 '1인 기업' 말만 믿었나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왜 글로벌 기업이 포기한 곳을 무리하게 다시 팠느냐"는 점이다. 해당 광구(6-1광구, 8광구)는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이자 세계적인 메이저 기업인 우드사이드(Woodside)가 2007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공을 들인 곳이다.

우드사이드는 이 기간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약 2억5789만 달러(한화 약 3525억원)를 쏟아부으며 정밀 탐사를 진행했다. 이 중 우드사이드가 부담한 금액만 1억3870만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그들은 2022년 "더 이상 가망이 없다(No prospectivity)"는 결론을 내리고 철수했다. 수천억 원의 매몰 비용을 감수하고 떠날 만큼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석유공사의 판단은 달랐다. 우드사이드가 떠난 자리를 채운 것은 연 매출 2만7000 달러 수준의 미국 1인 컨설팅 기업 '액트지오(Act-Geo)'였다. 정부는 2023년 초 액트지오에 약 129만 달러(18억원)를 주고 분석을 의뢰했고, 액트지오는 우드사이드와 정반대로 "대규모 매장 가능성이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데이터 해석 능력과 자본력에서 비교조차 안 되는 1인 기업의 분석 결과를 근거로 글로벌 메이저 기업의 15년 결론을 뒤집고 시추공 하나에 1000억원이 들어가는 작업을 강행한 것 자체가 상식 밖의 도박이었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우드사이드의 냉정한 판단이 옳았고, 정부의 무모한 베팅은 실패로 돌아갔다.

■ 미스터리 2. 대통령의 '깜짝 브리핑', 총선용 국면 전환 카드였나
발표 시점과 형식도 석연치 않다. 통상적으로 자원 탐사 결과나 시추 계획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실무 책임자가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탐사 단계에서 국가 원수가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정브리핑을 자청해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당시는 여당이 4⸱10 총선에서 참패한 지 불과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와 'VIP 격노설' 등으로 수세에 몰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설익은 성과를 포장해 '대국민 희망 고문'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러한 의구심은 실패 선언 당일, 산자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산자부 측은 브리핑 과정에서 "발표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정무적 개입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탐사 시추 결정과 발표 과정에 과학적⸱경제적 판단보다 정치적 논리가 깊숙이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미스터리 3. '스승과 제자, 그리고 아브레우'⸱⸱⸱그들만의 리그
천문학적 혈세가 투입된 국책 사업의 검증 시스템이 특정 인맥으로 얽힌 '카르텔'에 의해 작동했다는 의혹도 핵심 쟁점이다. 액트지오의 소유주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 그에게 용역을 맡긴 한국석유공사 실무진, 그리고 이를 검증한 해외 전문가 그룹 사이에 끈끈한 '삼각 커넥션'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석유공사 동해탐사팀장 A씨 등 관계자들은 프로젝트 공식 입찰 전인 2022년 11월과 2023년 2월, 아브레우 고문의 미국 자택을 잇따라 방문했다. 공적인 업무 협의를 회사 사무실이 아닌 개인 자택에서 진행한 것부터가 의문이다. 특히 A씨는 아브레우와 SNS '친구' 관계이며 과거 다수의 국제 학술회에서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검증 단계다. 정부는 액트지오의 분석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해외 자문단을 꾸렸는데, 이 자문단 소속의 한 국내 대학 교수가 A씨의 스승이자 아브레우 고문과 논문을 함께 쓴 '절친'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상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석유공사 전직 임원은 "용역을 발주한 사람, 수행한 사람, 검증한 사람이 모두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있다"며 "선수가 심판을 추천하고, 그 심판이 다시 선수의 손을 들어준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 "1000억 수업료? 책임 규명 없는 재시도는 어불성설"
정부는 이번 실패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를 축적한 의미가 있다"며 추가 시추 가능성을 열어뒀다. 5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후속 작업을 위해 해외 메이저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미 '빈손'으로 판명 난 광구에 선뜻 투자할 글로벌 기업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탐사 실패로 사라진 1000억원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남게 됐다. 단순한 시추 실패를 넘어 의사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과 예산 낭비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석유공사는 지금까지도 2022년 당시 아브레우 자택 방문 결과 보고서, 액트지오와의 구체적인 교신 내용, 해외 자문단 구성 현황 등 핵심 자료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야당은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대왕고래'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산유국의 꿈'을 미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채 강행된 무리한 도박. 그 끝은 허망했고, 남겨진 청구서는 가혹하다. 책임지는 사람 없이 또다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혈세를 쏟아붓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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