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33년 삼성 디램 천하 '종말'⸱⸱⸱SK하이닉스, 'AI 주도권'으로 반도체 역사 새로 썼다

백도현 기자

livekmin@hanmail.net | 2025-04-14 20:59:20

1992년 이후 처음 바뀐 1위 주인⸱⸱⸱SK하이닉스 DRAM 점유율 36%, 삼성전자(34%) 제쳐
'HBM 점유율 70%' 독주 영향⸱⸱⸱엔비디아 공급망 선점, 차세대 패키징 기술력 핵심 동력
삼성, 10나노급 초미세 공정 한계, 수율 난조에 '발목'⸱⸱⸱2분기 격차 더 벌어지나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절대 권력'으로 통하던 삼성전자의 33년 DRAM 독주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러온 메모리 패러다임의 거대한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세계 DRAM 시장 1위에 등극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절대 권력'으로 통하던 삼성전자의 33년 DRAM 독주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러온 메모리 패러다임의 거대한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세계 DRAM 시장 1위에 등극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분기 점유율의 변동을 넘어 1992년 이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기술 삼성'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 숫자로 증명된 '메모리 권력 이동'
14일 홍콩의 IT 전문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Counterpoint)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글로벌 DRAM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점유율 36%를 기록하며 삼성전자(34%)를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공신력 있는 시장조사업체 집계에서 DRAM 부문 1위를 수성하지 못한 것은 1992년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왕좌에 오른 이후 33년 만이다.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은 25%의 점유율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이번 순위 역전의 결정적 한 방은 단연 고대역폭 메모리(HBM)였다. 과거 DRAM 시장이 PC와 스마트폰 등 범용 제품의 '물량 공세'와 '원가 경쟁력'으로 승부하던 시대였다면, 현재는 고성능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이 전체 시장의 수익성과 주도권을 결정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 HBM 시장에서 약 70%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며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굳혔다. 특히 'AI 황제'로 불리는 엔비디아에 HBM3E 모듈 주문의 대부분을 독점 공급하며 실적과 상징성을 모두 챙겼다는 분석이다.

■ HBM 패키징 기술력이 가른 승패⸱⸱⸱MR-MUF vs TC-NCF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의 승리 요인으로 '선제적인 기술 투자'와 '패키징 혁신'을 꼽는다. SK하이닉스는 HBM 적층 시 칩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공정에서 'MR-MUF(매스 리플로우 몰디드 언더필)' 기술을 도입해 방열 성능과 생산 수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반면 삼성전자는 기존의 'TC-NCF(열압착 비전도성 필름)' 방식을 고수하다가 12단 이상의 고적층 HBM 공정에서 발열 조절과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엔비디아의 까다로운 품질 테스트(PRQ) 통과가 지연됐다.

카운터포인트는 "SK하이닉스는 새로운 AI와 서버 기술의 핵심이 되는 HBM 부문의 성공에 힘입어 삼성전자를 앞질렀다"며 "단순히 먼저 시작한 것을 넘어 엔비디아라는 강력한 파트너와 함께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가 범용 DRAM의 수익성에 안주하며 기술 변곡점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라는 새로운 영토를 완벽히 선점한 셈이다.

■ 10나노급 공정 열세와 초격차 상실 위기
삼성전자의 위기는 비단 HBM뿐만이 아니다. 범용 DRAM의 근간이 되는 10나노급(1a, 1b) 미세 공정에서도 수율 난조와 성능 저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6세대 10나노급(1c) DRAM 개발에서도 SK하이닉스에 밀린다고 평가한다. '초격차'를 핵심 가치로 내걸었던 삼성전자가 이제는 오히려 '추격자' 입장에 선 것이다.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삼성전자는 1위 탈환을 위해 내년 초 HBM4 칩 양산을 공식화하고 조직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차세대 공정 경쟁력에서도 혁신적인 돌파구가 없다면, 이미 벌어진 HBM 주도권 격차를 좁히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료=예결신문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이번 2위 추락이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주는 경고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기술 리더십의 균열로 규정했다. 이 교수는 "삼성전자가 33년 만에 1위를 내준 것은 단순한 수치의 하락이 아니라 '메모리는 삼성'이라는 전제 조건이 무너진 중대 사건"이라며 "특히 차세대 디램에 필수적인 11~12나노급 공정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고 있다는 점은 기술의 삼성이라는 자부심에 치명적인 타격"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HBM4 개발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엔비디아와 하이닉스의 견고한 동맹 체제를 단기간에 뚫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2분기 이후에도 SK하이닉스의 독주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SK하이닉스의 선두 유지는 우연이 아닌 철저한 준비의 결과"라며 "2분기에도 HBM3E 물량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삼성과의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수율 안정화와 더불어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익성 중심의 보수적 경영에서 벗어나 파괴적인 R&D 혁신을 보여줘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도했다.

■ '영원한 강자는 없다'⸱⸱⸱반도체의 격언
33년 만에 바뀐 1위의 주인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이제 '리딩 컴퍼니'가 아니다. 단순히 HBM4 개발에 성공하는 것을 넘어 차세대 공정과 패키징 기술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증명해야만 잃어버린 왕좌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KIET) 전문연구위원은 "메모리 시장이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AI 맞춤형 고성능 제품으로 바뀌는 변곡점에서 삼성이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며 "이제 점유율 숫자에 연연하기보다 무너진 기술 초격차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예결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