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의 배신"⸱⸱⸱43조 개발이익, 절반이 '개인 로또' 됐다

백도현 기자

| 2024-09-24 19:13:22

SH도시연구원 "판교신도시, 공공성 확보 실패한 모델"⸱⸱⸱개발이익 54% 수분양자가 독식
강남 집값 잡겠다더니⸱⸱⸱되레 주변 시세 끌어올리며 '서울 확장'만 초래
"3기 신도시는 달라야"⸱⸱⸱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도입 시 공공이익 2배 급증
판교 개발 20년이 지난 지금, 판교신도시는 대한민국 부동산 개발 역사에서 '성공한 신도시'로 불리지만, 공공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모델'이라는 뼈아픈 분석이 제기됐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2003년 참여정부 시절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특명 아래 추진된 제2기 신도시의 상징 '판교'. 개발 20년이 지난 지금, 판교신도시는 대한민국 부동산 개발 역사에서 '성공한 신도시'로 불리지만, 공공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모델'이라는 뼈아픈 분석이 제기됐다.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이 발생했지만, 정작 공공으로 환수되어야 할 몫은 줄고 소수 개인의 시세차익으로 귀결되는 '로또 분양'의 산실이 됐다는 지적이다.

■ 개발이익 43조 중 23조가 '개인 주머니'로
24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산하 SH도시연구원이 발표한 '판교신도시 개발이익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판교신도시 택지 조성 단계부터 올 9월 현재까지 발생한 총 개발이익(자산가치 상승분 포함)은 약 4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단일 신도시 사업으로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막대한 규모다.

그러나 이익의 배분 구조를 뜯어보면 '공공 개발'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다. 분석 결과, 전체 이익의 절반이 넘는 54.4%(약 23조4000억원)가 아파트를 분양받은 개인(수분양자)의 시세차익으로 돌아갔다.

공공이 주도해 그린벨트를 풀고 택지를 조성했지만, 그 과실의 대부분은 운 좋게 당첨된 수분양자들이 향유한 셈이다. 이는 공공자산을 활용한 개발사업이 투기를 조장하고 불로소득을 양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역시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 LH는 판교신도시에서 택지 판매와 아파트 분양 수익으로 5조4000억원, 보유 중인 국민임대주택 4개 단지의 자산가치 상승분 6조1000억원 등 총 11조5000억원의 이익을 확보했다. 결국 43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파이의 80% 이상을 수분양자와 사업 시행자가 가져가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 "강남 대체? 서울 확장일 뿐"…⸱⸱⸱집값 안정화 실패
판교신도시의 태생적 목표였던 '강남 집값 안정' 역시 실패했다는 것이 연구원의 분석이다. 판교는 강남의 수요를 분산시켜 가격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판교 자체의 가격이 급등하며 주변 시세까지 끌어올리는 '서울의 확장' 결과만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SH도시연구원이 분석한 시세 변화 추이를 보면, 강남 아파트 분양가는 2001년 3.3㎡당 약 1300만원에서 올해 8618만원으로 6.6배 폭등했다. 같은 기간 분당 역시 2003년 3.3㎡당 1300만원 수준에서 올해 4851만원으로 3.7배나 뛰었다. 판교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인근 분당과 강남의 집값이 동반 상승하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SH도시연구원 관계자는 "판교 사례는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여 아파트를 분양하는 기존의 개발 방식이 집값 안정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며 "오히려 공공이 보유해야 할 토지가격 상승분이 개인에게 사유화되면서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꼬집었다.

■ 대안: '땅은 공공이, 건물만 분양'…SH 모델의 실험
연구원은 이 같은 '개발이익 사유화'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향후 신도시 사업, 특히 3기 신도시에서는 개발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공공이 토지의 소유권을 놓지 않는 것이다.

연구원이 제안한 대안은 이른바 'SH 방식'으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백년주택)과 장기 공공임대 주택 위주의 공급이다. 기존 LH 방식이 택지를 민간 건설사에 매각해 당장의 분양 수익을 챙기는 구조라면, SH 방식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하거나 임대하여 장기적인 자산 가치 상승분을 공공이 가져가는 구조다.

이를 판교신도시에 대입해 시뮬레이션한 결과는 극적이다. 기존 LH 방식 대신 SH 방식을 적용했을 경우, 공공이 확보할 수 있는 수익과 자산가치 상승분은 23조9000억원(골드타운 방식 적용 시)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현행 LH 방식(11조5000억원)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 안정 효과다. SH 방식은 건물만 분양하기 때문에 수분양자가 가져가는 과도한 시세차익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연구원은 이 방식을 적용했다면 약 9조5000억원가량의 가격 안정 효과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 "강남 3~5억 아파트 가능…3기 신도시 적용해야"
이러한 분석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평가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3기 신도시와 향후 서울 내 개발 사업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연구원은 토지임대부 분양 방식을 적용할 경우, 땅값이 비싼 강남권에서도 3억~5억원대의 '반값 아파트' 공급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토지 가격을 분양가에서 제외하고 건물 가격만 받기 때문에 초기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SH도시연구원은 3기 신도시 개발 전략의 대수술을 주문했다. 공공주택 공급 비율을 전체의 5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고, 공공분양 물량은 30% 이하로 책정하되 이마저도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으로 전환하여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헌동 SH공사 사장은 그동안 "공공이 토지를 팔지 않고 보유하면, 그 자산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하여 결국 국가와 국민의 부(富)가 된다"고 강조해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김 사장의 지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SH도시연구원 천현숙 원장은 "그린벨트 해제와 토지 수용권 발동 등 막강한 공적 권한을 동원해 만든 신도시에서 발생한 이익은 철저히 공공에 귀속되어야 한다"며 "LH 방식의 개발은 이제 수명을 다했으며, 토지를 공공이 보유하는 방식만이 집값 안정과 공공성 확보, 공공 자산가치 증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판교의 화려한 성공 이면에 가려진 '공공성의 실패'. 이제라도 개발이익의 향방을 개인의 '로또'가 아닌 국민 전체의 '복지'로 돌려놓기 위한 과감한 정책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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