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K-철강' 영업익 43% 증발⸱⸱⸱일회성 이익에 가려진 '구조적 불황'과 세수 위기
백도현 기자
| 2025-02-18 18:10:33
트럼프 2기 '25% 관세 폭탄' 현실화 시 대미 수출길 봉쇄 위기
법인세 감소에 따른 포항·광양 등 거점 도시 세수 비상⸱⸱⸱'철강 특구' 지원 예산 편성 절실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대한민국 기간산업의 허리인 철강업계가 지난해 수익성 급락이라는 거친 풍랑을 만났다. 주요 철강사들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증발한 가운데 일부 업체들은 자회사 환급금이나 세무 정산 등 '비경상적 일회성 이익'으로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고전적인 불황 국면에 진입했다.
특히 2025년은 국내 건설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더불어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발 고관세 장벽이 예고돼, 산업 생태계 보호와 지역 경제 위축을 막기 위한 정부의 과감한 예산 투입과 정책적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2.1조 원으로 쪼그라든 영업이익…'수급 불균형'에 갇힌 철강사
18일 한국신용평가와 철강업계 잠정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포스코, 현대제철, 세아베스틸, 세아제강 등 국내 주요 철강업체의 연간 합산 매출액은 68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5% 감소했다. 외형 성장세가 꺾인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수익성 지표다. 합산 영업이익은 2조1000억원에 그쳐 전년(3.7조원) 대비 무려 43.5%나 급감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의 일차적 원인은 2년여간 지속된 글로벌 철강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다. 원재료 가격 상승분만큼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가격을 전가할 수 없는 시장 구조'가 형성되면서 철강사들의 마진 스프레드가 급격히 악화됐다.
여기에 국내외 건설 및 가전 수요 부진에 따른 가동률 하락이 고정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공공요금 발 비용 압박과 함께 재고평가손실 및 통상임금 관련 일회성 비용이 반영되며 현금 흐름에 타격을 입혔다.
■ 일회성 호재로 버틴 수익성…'장부상 이익'
기업별로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중국산 저가 후판 및 선재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범용재 품목에서 막대한 손실을 봤다. 그나마 수익성이 높은 자동차용 냉연 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WTP) 판매를 통해 실적의 급격한 추락을 방어했다.
현대제철의 경우,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여파로 봉형강 부문이 극심한 저수익 기조를 이어갔으나 4분기에 자회사의 미국 관세 납부액 환급(약 550억원)이라는 비경상적 이익이 반영되며 장부상 수치를 보전했다.
세아제강 역시 한-미 APA(이전가격 사전합의제) 정산에 따른 약 1300억원대의 일회성 이익이 실적에 반영되며 표면적으로는 선방한 듯 보이지만, 핵심 먹거리인 에너지용 강관 수출 가격 하락이라는 구조적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일회성 이익은 기업의 체력을 증명하기보다는 오히려 본업에서의 이익 창출력이 얼마나 약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 2025년 '트럼프 25% 관세'와 '중국 과잉 생산'의 파상공세
2025년 철강업계의 전망은 한마디로 '시계 제로'다. 가장 큰 리스크는 미국의 통상 환경 변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모든 수입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의 일률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다.
한국산 철강의 대미 수출 비중은 전체의 10%를 차지하며 특히 강관류의 경우 미국 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다. 만약 이 조치가 현실화된다면 대미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이 증발하거나 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전 세계 철강 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수출 공세는 국내 시장을 고사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수 소비가 살아나지 않자 중국 철강사들은 10억 톤 이상의 생산량을 유지하며 남는 물량을 한국을 포함한 인접국에 밀어내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철강 수출은 역대 두 번째인 1억1200만 톤을 기록했으며, 이는 국내 철강 생태계의 가격 결정권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있다.
■ 향후 전망: 법인세 감소와 지역 경제 세수 비상
철강업계의 실적 악화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위기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포항, 광양, 당진 등 철강 거점 도시들은 철강사들이 납부하는 법인지방소득세와 관련 협력업체들의 고용 유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면 지자체의 세입 예산 또한 큰 폭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해당 지역의 SOC 투자 축소와 복지 예산 삭감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온다.
철강 도시들의 내년 법인세 수입은 전년 대비 최소 20~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지자체가 계획 중인 신규 산업 단지 조성 및 인프라 고도화 사업의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산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개입을 주문하고 있다. 우선, 전기요금 등 철강 제조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비용에 대해 한시적인 특례 요금을 적용하거나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의 지원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
또한, 글로벌 탄소 장벽(CBAM 등)에 대응하기 위해 수조원이 소요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등 저탄소 생산 체계 전환을 위한 R&D 예산을 조기에 집행하고 민관 합동 펀드를 조성할 필요도 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KIET) 소재·산업환경실장은 현재의 철강 산업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발 통상 압박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시점에서는 개별 기업의 대응을 넘어 정부 차원의 통상 대응 예산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특히 위축된 내수 시장을 살리기 위해 노후 교량이나 공공 SOC 교체 사업에 국산 철강재 사용을 권장하는 정책적 배려가 동반되어야 철강 수요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2025년 K-철강의 위기 극복 여부는 기업의 긴축 경영을 넘어 정부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산업 예산을 배치하고 탄소 중립 등 미래 공정에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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