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퇴진은 옛말"⸱⸱⸱하나금융, '70세 룰' 깨고 '함영주 굳히기' 나섰나
신세린 기자
| 2024-12-14 18:21:26
김정태 전 회장도 지킨 원칙 무색⸱⸱⸱함 회장 연임 시 2028년까지 '장기 집권'
'연봉 킹' 논란에 '사법 리스크'까지⸱⸱⸱금융당국 "지배구조 선진화 역행" 예의주시
[예결신문=신세린 기자] "조직의 건강한 긴장감과 세대교체를 위해 CEO의 나이를 제한한다."
지난 2011년, 하나금융지주가 금융권 최초로 도입해 신선한 충격을 줬던 '이사 재임 연령 만 70세 제한' 규정이 13년 만에 사실상 무력화됐다. 하나금융이 최근 내부규범을 개정해 회장의 임기를 만 70세가 넘어서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변경하면서다.
표면적인 이유는 '경영 안정성'이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함영주 회장의 연임과 장기 집권을 위한 '맞춤형 포석'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 '김정태의 용퇴' 지워버린 룰 변경…누구를 위한 개정인가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최근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했다. 핵심은 임원 정년 규정의 완화다. 기존 규정은 '만 70세가 되는 해당일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주주총회'가 아니라, '만 70세가 되는 해당일 이후'에 임기가 자동 종료되는 엄격한 방식이었다. 그
러나 이번 개정안은 '재임 중 만 70세가 도래하더라도 최종 임기는 해당 임기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정기주주총회일까지로 한다'고 명시했다. 즉, 임기 도중 70세를 넘겨도 3년 임기를 끝까지 마칠 수 있게 빗장을 푼 것이다.
룰 변경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함영주 회장이다. 1956년생인 함 회장은 현재 만 68세다. 기존 룰대로라면 내년 3월 주총에서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만 70세가 되는 2026년 이후 도래하는 2027년 3월 주총까지만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임기 3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2년 만에 물러나야 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룰 변경으로 함 회장은 연임 시 2028년 3월까지 3년 임기를 온전히 보장받게 됐다.
이는 전임자인 김정태 전 회장의 행보와도 극명히 대조된다. 김 전 회장은 4연임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만 70세 룰'을 준수하기 위해 마지막 임기를 1년만 수행하고 2022년 스스로 물러났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박수 칠 때 떠나는 아름다운 용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후임 회장을 위해 이 원칙이 깨지면서 하나금융의 지배구조가 과거로 회귀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연봉 킹'의 역설…사법 리스크 안고 '황제 연임' 가나
이번 개정이 더욱 도마 위에 오르는 이유는 함 회장을 둘러싼 '고액 보수'와 '사법 리스크' 논란 때문이다. 함 회장은 올 상반기에만 18억2200만원의 보수를 수령하며 5대 금융지주 회장 중 '연봉 킹'에 올랐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10억9600만원), 양종희 KB금융 회장(8억7700만원) 등 경쟁사 CEO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액수다.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정작 회사의 불확실성은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함 회장은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으나, 지난달 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회장직 유지가 불가능해지는 치명적인 'CEO 리스크'를 안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의 임기 연장을 위해 룰까지 변경하는 것은 주주 가치 제고와 ESG 경영에 역행하는 행보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신한사태' 반면교사 잊었나…유일하게 남은 건 신한뿐
하나금융이 2011년 만 70세 룰을 도입했던 배경에는 2010년 금융권을 뒤흔든 '신한사태'가 있었다. 당시 신한금융은 라응찬 전 회장 등 경영진 간의 고소·고발과 내분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이를 지켜본 하나금융은 장기 집권에 따른 권력 사유화와 조직의 경직을 막기 위해 CEO의 나이를 제한하는 강력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주요 금융지주 중 엄격한 '만 70세 룰'을 유지하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신한금융지주 한 곳만 남게 됐다. 금융권 한 원로는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노련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견제 장치가 사라진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거나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 만든 원칙을 편의에 따라 바꾸는 것은 지배구조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 금감원의 경고…"지배구조 모범 관행 위배 여부 살필 것"
금융당국의 시선도 싸늘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은 은행권 지배구조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CEO 선임 및 경영 승계 절차의 투명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말 발표한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 역시 제왕적 회장의 장기 집권을 견제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금감원은 이번 하나금융의 규범 변경이 이런 정부의 지배구조 선진화 기조에 역행하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당국 관계자는 "주주총회 결의를 존중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특정인의 임기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하나금융 측은 "이번 개정은 특정 인물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이사진 전체를 대상으로 사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사업 추진과 수익구조 강화라는 경영상의 이유를 대더라도,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셀프 임기 연장'이라는 꼬리표를 떼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예결신문 / 신세린 기자 beluga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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