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이슈 下] "시간이 없다" 지주사들의 속도전⸱⸱⸱법 시행 전 '우량 자회사 상장' 우려

김용대 칼럼니스트

8timemin@hanmail.net | 2025-03-15 16:07:50

상법 개정 발효 전 '규제 사각지대' 노린 지배구조 개편 가속화⸱⸱⸱소액주주 가치 훼손 우려
'독립이사' 명칭 변경에 따른 이사회 회의록의 무기화⸱⸱⸱"이젠 기록되지 않은 판단은 범죄"
금융권 경고 "자산총액 압도하는 알짜 자회사 보유 지주사, 법 시행 전 IPO 리스크 예의주시"
13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마자 국내 주요 지주회사들의 전략 회의실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사 충실의무 확대'라는 거대한 제도적 변화가 발효되기 전, 기업들은 그동안 미뤄왔던 지배구조 개편이나 자회사 상장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막판 스퍼트'에 나선 모습이다. (일러스트=AI)

[예결신문=김용대 위원] 폭풍 전야의 고요함일까. 어제(13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마자 국내 주요 지주회사들의 전략 회의실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사 충실의무 확대'라는 거대한 제도적 변화가 발효되기 전, 기업들은 그동안 미뤄왔던 지배구조 개편이나 자회사 상장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막판 스퍼트'에 나선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 전까지의 유예 기간이 우리 기업들이 선진 거버넌스로 나아가는 준비 기간이 될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규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 경영'의 각축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비상장 우량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사들의 움직임이다. 개정 상법이 시행되면 자회사를 물적 분할하거나 재상장하는 과정에서 지주사 소액주주들의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이사들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짊어지게 되면 자회사 상장으로 인한 지주사 주가의 '더블 카운팅(중복 계산)' 감액분은 고스란히 이사들의 법적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법 시행 전 자회사의 IPO(기업공개)를 서둘러 마무리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른바 '규제 전 밀어내기 상장'이다.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은 냉정하다. 한화투자증권 김소혜 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실제 시행까지 일정 기간 유예가 주어질 경우, 상장 지주사들이 비상장 자회사의 상장을 조속히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연구원은 "지주회사의 별도 기준 자산총액이나 매출액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우량 비상장 자회사를 보유한 지주회사들에 대해서는 투자 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법안의 취지가 주주 보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발효 전까지는 오히려 주주들이 기업의 회피 전략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사회 운영 방식 역시 혁명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명칭이 '독립이사'로 바뀌는 것은 단순한 이름값의 변화가 아니다. 이제 이사회는 대주주의 의사결정을 사후 승인하는 곳이 아니라 모든 결정 과정에서 주주 가치를 어떻게 고려했는지를 치밀하게 기록하고 남겨야 하는 '사서'가 돼야 한다.

한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앞으로 이사회 회의록은 소송에서 이사들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방어막이 될 것"이라며 "회의록에 소액주주의 이익을 위한 대안 검토나 반대 의견, 그리고 합리적 판단 근거가 구체적으로 기재되지 않는다면 해당 이사는 충실의무 위반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법 시행 전까지 이사회의 독립성을 증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주주들과의 소통 채널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단순히 거부권 행사를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기엔 자본시장의 눈높이가 이미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정책위원은 "기업들이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은 단기적인 모면책일 뿐, 결국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유예 기간을 규제 회피의 기회가 아닌, 주주 친화적 경영 체계로 완전히 전환하는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법 개정안은 이제 우리 기업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과거의 '가족 경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지배구조를 글로벌 표준에 맞게 혁신할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규제의 틈새를 찾아 숨을 것인지.

법 시행 전까지 벌어질 지주사들의 치열한 눈치싸움과 속도전은 우리 자본시장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예결신문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을 면밀히 감시하고, 진정한 의미의 '주주 자본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을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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