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집: 2025 지방 재정 실태] ③ 미래 자산 헐어 연명하는 지자체 ‘기금 돌려막기’의 덫
백도현 기자
livekmin@hanmail.net | 2025-12-26 12:38:29
"지방채 대신 기금 전용" 통계 왜곡 심각⸱⸱⸱미래 재난·건축 재원 고갈로 '이중고' 직면
"내일의 예산을 오늘 가로채는 행위⸱⸱⸱기금 상환 계획 투명하게 공개해야"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지방자치단체의 곳간을 지탱하는 두 축은 예산과 기금이다. 예산이 당해 연도의 살림살이를 위한 것이라면, 기금은 신청사 건립이나 재난 대비, 지역 산업 육성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장기간 적립해두는 '미래를 위한 저축'이다.
하지만 최근 역대급 세수 부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전국 지자체들이 이 미래 자산을 헐어 당장의 일반 살림살이를 메우는 이른바 '기금 돌려막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예결신문은 3부 기획으로 지자체들이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을 통해 특정 목적 기금을 일반회계로 전용하는 실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 왜곡 문제를 심층 분석했다.
■ 강원도 신청사 기금 위기⸱⸱⸱991억 적립하고도 실질 잔고 '제로'
기금 돌려막기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강원도의 '신청사 건립 기금'이다. 도는 도청 신축을 위해 총 991억원을 적립하며 야심 차게 사업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최근 도의회 예결위 심사 과정에서 드러난 실상은 처참했다. 도가 세수 부족으로 인한 일반회계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신청사 기금을 통합재정안정화기금으로 예탁(사실상 차입)해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희열 강원도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예결위 회의에서 "재정이 좋았을 때 기금을 더 적립했어야 했는데 안타깝다"며 올해 말이면 실무적으로 가용할 수 있는 기금 잔고가 사실상 고갈될 것임을 시인했다. 5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공사를 앞두고 저축해둔 돈을 '생활비(일반 운영비)'로 써버린 셈이다.
이로 인해 내년 예정인 신청사 보상과 착공 과정에서 도는 막대한 규모의 지방채 발행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미래를 위해 쌓은 돈을 당장의 위기를 가리는 데 소모한 전형적인 사례다.
■ 수원시·목포시, '세수 펑크'를 기금 내부 차입으로 연명
재정 자립도가 높기로 유명한 경기도 수원시마저도 '기금 돌려막기'의 늪에 빠졌다.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의 법인 지방소득세가 급감하면서 발생한 수천억 원대의 세수 결손을 보전하기 위해 시는 약 1120억원의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을 일반회계로 전용했다.
이는 지자체가 지방채 발행에 따른 채무 비율 상승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편법적 수단으로, 결과적으로는 미래 재난 대응이나 도시 개발을 위해 써야 할 예비 재원을 잠식하고 있다.
전남 목포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채무 비율이 높은 시는 공식적인 빚을 늘리지 않기 위해 감채기금 등 특정 목적 기금에서 약 280억원을 일반회계로 예탁했다. 이는 통계상으로는 채무가 늘어나지 않아 재정이 건전해 보이는 '착시 효과'를 주지만, 실질적으로는 갚아야 할 내부 부채가 쌓여가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를 "내일의 예산을 오늘 가로채 쓰는 무책임한 행정"이라고 비판한다.
■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의 실체…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채무'
지자체들이 기금을 헐어 쓰는 합법적 통로는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이다. 이는 각 기금의 여유 자금을 통합 관리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도입됐으나 최근에는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한 '내부 차입 통로'로 변질됐다.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돈을 빌리는 지방채와 달리, 내부 기금을 가져다 쓰는 것은 행정안전부의 채무 관리 지표에 직접적으로 잡히지 않아 선호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재정 운영의 불투명성을 키운다. 경북 경주시와 전북 전주시 등도 각각 450억원과 510억원대의 기금을 일반회계로 전용하며 세입 결손을 보전하고 있다. 이러한 내부 차입은 결국 2~3년 내에 일반회계에서 기금으로 다시 상환해야 하는 돈이다.
만약 향후 세입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자체는 기금 상환을 위해 또 다른 빚을 내야 하는 '부채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자체들이 지방채 발행을 꺼리는 이유는 채무 비율이 높아져 '부실 지자체'로 비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내부 기금을 헐어 쓰는 것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부채'와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강원도 신청사 기금 사례처럼 특정 목적을 위해 적립된 돈을 일반 살림에 쓰는 것은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기금을 일반회계로 전용할 때는 반드시 구체적인 상환 계획과 이자율을 공시하고, 의회가 이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난관리기금 등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자금은 일반회계 전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기금 운용 투명성 확보 시급
기금은 지자체의 비상금이자 미래 성장 동력이다. 현재와 같은 기금 돌려막기 관형을 방치한다면 향후 지자체는 대규모 기반 시설 투자나 예기치 못한 재난 복구 상황에서 손을 놓게 될 위험이 크다.
정부는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예탁 비중을 엄격히 제한하고 기금 상환 이행 여부를 지자체 재정 분석 평가의 핵심 지표로 강화해야 한다. 지방의회 또한 예산 심사만큼이나 기금 운용 계획의 변경을 꼼꼼히 감시해 자의적인 기금 전용을 차단해야 한다.
예결신문은 이어지는 4부에서 기금조차 고갈된 영세 지자체들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선심성 축제'와 '전시성 토목 예산'의 낭비 실태를 파헤칠 예정이다.
■ 출처
•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 '2024회계연도 결산 검사 의견서' 및 '기금운용보고서'
• 각 지자체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운용 명세서 및 일반회계 예탁·수탁 현황 공시 자료
• 강원도청 기획조정실 및 재산관리과 2024~25년 세입세출 예산서 및 신청사 건립 기금 집행 계획안
• 행안부 '지방자치단체 재정분석 결과 보고서' 및 나라살림연구소 '지방 재정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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