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권력 개입 의혹] ② 리스크 지침 비껴간 '도이치 대출'⸱⸱⸱수협 내부 심사 규정 무력화?
백도현 기자
livekmin@hanmail.net | 2025-08-09 01:33:57
어민 위한 정책금융 대신 특정 기업에 4%대 저리 혜택
단위수협 9곳 동시 동원된 전례 없는 자금 집행 구조
[예결신문=백도현 기자] 수협중앙회와 수협은행이 도이치모터스 일가에 집행한 648억원 대출 논란은 내부 통제 시스템의 작동 여부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다.
9일 수협 의혹과 관련해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수협은 자체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하는 '오너 리스크'와 '평판 위험'을 사실상 배제한 채 대출을 승인했다. 수협의 설립 목적이 어업인의 권익 보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자금 운용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업에 편중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 오너 사법 리스크 외면한 부실 심사 보고서
수협은행의 내부 여신 심사 지침에 따르면 대출 대상 기업의 경영진이 형사 처벌을 받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기업의 계속성에 영향을 줄 경우, 이를 신용 등급 산정에 엄격히 반영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본지가 확인한 2023년 3월 대출 실행 당시 작성된 심사 의견서에는 권오수 전 회장의 주가조작 혐의 1심 유죄 판결 사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영업 안정성 양호, 재무 안정성 무난'이라는 단편적인 평가만 기재됐다. 이는 금융기관이 수백억원대의 여신을 결정할 때 거치는 기본적인 '부정적 뉴스 스크리닝' 단계가 의도적으로 생략됐음을 의미한다.
금융권의 한 여신 심사 전문가는 "담보가 확실하더라도 오너의 사법 리스크가 확정된 직후에는 대출 한도를 축소하거나 가산 금리를 적용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의 기본 원칙"이라며 "유죄 판결 한 달 만에 신규 거래를 재개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평판 리스크 항목을 누락한 것은 명백한 부실 심사 혹은 상부의 외압이 작용한 흔적"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수협은행은 2020년 당시 도이치모터스 관련 수사가 시작되자 대출 연장을 거부하며 거래를 끊었던 전례가 있어 3년 만에 바뀐 심사 태도는 더욱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어민은 7퍼센트대 고금리, 특정 기업엔 4%대 초우대
수협의 대출 조건은 일반 고객이나 어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상품과 비교했을 때 더욱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고금리 기조 속에서 일반 어민들이 수협에서 받는 담보대출 금리는 통상 6~7%대에 달했다.
경영난으로 긴급 자금을 요청한 영세 어민들에 대한 대출 심사는 강화된 반면, 도이치모터스 계열사에 적용된 금리는 최저 4.20% 수준이었다. 정책 금융의 혜택이 어민이 아닌 특정 기업의 자금난 해소에 집중된 셈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같은 시기 수협의 어업인 대상 정책 자금 대출 승인율은 예년보다 하락했다. 수협이 어민들의 자산을 관리하며 얻은 수익이 정작 어촌 사회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정치적 파장이 큰 기업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데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는 수협법 제1조에 명시된 '어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이라는 설립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 중앙회 주도의 '탑다운' 자금 집행 의혹
자금 집행의 방식 또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다. 작년 4월 30일 하루 동안 9개 단위수협이 일제히 도이치오토월드에 360억원을 대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국의 각기 다른 단위수협들이 같은 날 동일한 대상을 상대로 거액의 대출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중앙회 차원의 강력한 조율과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개별 조합의 자율적인 여신 판단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가진 중앙회 주도의 자금 지원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 과정에서 노 회장의 수사를 담당했던 해경 고위 간부가 퇴임 직후 수협 자문위원으로 재취업을 시도했던 사실까지 드러나며 유착 의혹은 확산하고 있다. 노 회장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도이치모터스라는 민감한 연결고리를 활용해 정권과의 접점을 만들려 했다는 의심이다.
수협 측은 본지에 "정상적인 담보 대출이며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내부 심사 과정의 불투명성과 금리 산정의 비합리성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수협이 어민의 자산을 특정 기업의 리스크 방패막이나 정권과의 가교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도덕적 해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수협의 여신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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